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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8_計

사과조림을 하다가 오른손 검지를 살짝 베였다. 사과를 썰다가 상처가 생긴 것은 아니고 시나몬 가루의 포장을 뜯다가 일어난 일이다. 그렇게 세게 긁힌 것도 아닌데 피가 흘러나왔고 여전히 약간의 흉터가 남아있다.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가끔은 정말로 뜬금 없이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이런 사건 사고를 맞닥뜨리게 된다. 누가 거기에 베일 것이라고 상상이나 하겠는가. 이런 문제는 피할 수가 없다. 경황이 없었던 탓에 올리지 못했던 기간 동안의 신변잡기란 대체로 이런 성격의 일들로 메워졌다. 지난 금요일에는 거실의 전기가 나갔다. 정확히 말하면 전등 스위치가 먹통이 됐다. 두꺼비 집을 통해 켜고 끌 수 있었지만 불을 켜두면 지직거리는 소리가 꽤 크게 났다. 하지만 두꺼비 집을 내리는 방식으로 불을 꺼두면 아예 거실 쪽..

신변잡기 2024.02.20

20240204_計

굉장히 빠르게 시간이 지나갔다. 논문도 고작 한 편 정도 밖에 읽고 정리하지 못했다. 원고 교정 때문에 시간을 썼기 때문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의욕이 그렇게 많이 나지 않았던 한 주였다. 다만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꽤 길었고 또한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그 외의 일로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권에 돌입했다는 것 정도로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주였다. 하지만 마음의 파고는 꽤 요동이 쳐 크게 부침을 겪기도 했다. 지독한 쓸쓸함 잠시 느끼기도 하였고 지독한 악랄함 혹은 지독한 옹졸함 아무튼 어떤 지독함을 곁눈질로 엿보았다. 마음의 방파제를 단단히 쌓아야 할 필요를 느낀다. 살아가면서 내내 풀어 나가야 할 지독한 숙제가 아닌가 싶다. 운동 3회를 채우지 못 했지만 예정대로 다음 주는 운동을 쉬고 그..

신변잡기 2024.02.05

Pierre Macherey, Judith Butler et la théorie althussérienne de l’assujettissement 정리

우리는 이데올로기가, 우리가 호명(interpellation)이라고 부르는 아주 정확한 이 작용을 통해, 개인들 가운데서 주체들을 “징집하(recrute)”거나(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을 모두 징집한다) 혹은 개인들을 주체로 “변형시(transforme)”키는(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을 모두 변형시킨다) 그러한 방식으로 “움직이(agit)”거나 혹은 “기능한다”라고 연상하는데, 우리는 이 호명을 매일 벌어지는 가장 흔해 빠진 경찰의 (혹은 경찰이 아니더라도) 호명 유형으로 재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이, 거기 당신!” (주석: 일상적으로 실천되는 정확한 의식에 복속된 호명은 “수상한 자(suspects)”를 호명하는 경찰 호명의 실행에서 아주 “특별한” 형태를 취한다) 만약 우리가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상..

학업기록 2024.02.04

20240128_計

늦잠을 자고 일어나, 운동을 먹고, 끼니를 차려먹은 정도만 했을 뿐인데 벌써 어스름조차 어둠에 삼켜진 밤이 되었다. DUMAS에 대강 오탈자만 수정한 논문을 제출하고, 아틀리에 발표를 한 달 미루었더니 마음이 약간 해이해진 탓인지 그다지 손에 잡힌 무엇인가를 하지는 않았다. 다만 재교를 봐야 할 원고가 넘어왔고 『신학정치론』 5장 번역을 마쳤다. 그 외에는 딱히 무슨 일을 했던가? 우선 초코 머핀을 만들어 보았다는 것과 계급횡단자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회에 참석했다는 것이 기억난다. 아직까지는 프랑스인 연구동료들과 몇 마디 말을 나누어도 내가 무언가 흥미로운 것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대화를 했다는 느낌보다 상대 쪽에서 외국인에 대한 의례적인 배려를 했다는 인상만이 있다. 언젠가 그 벽을 넘을..

신변잡기 2024.01.29

20240121_計

도스토옙스키는 얼마 읽지 못하였다. 삶의 문제와 멀다고 느끼기 때문일까. 페이지를 넘기기 어렵다. 첫 시도를 했을 때에도 이런 느낌이었지. 그렇다면 반대로 바로 그때 『상처 받은 사람들』을 읽었다면 어떠했을까? 미셸 빌리의 홉스 챕터를 다 끝내고 몇 개의 학회에 참여했으며 하지만 그럴 듯한 결과를 정리하여 내놓지는 못했다. 그 점이 못내 못마땅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학업 면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삶의 측면에서는 해묵은 것들을 청산하고 해소할 수 있었던 한 주였다.

신변잡기 2024.01.22

J.-F. Kervégan (2021), Les droits comme institutions 정리

초록 이 논문은, 자연법(jusnaturaliste) 이론과 법실증주의(juspositiviste) 이론 사이의 고전적 대립에서 출발하여, 모리스 오리우(Maurice Hauriou)의 제도 이론과 프리드리히 카를 폰 사비니(Friedrich Carl von Savigny)의 법제도(Rechtinstitute) 개념에 의거하여 권리(droits)에 관한 제도주의적 개념이 이 양자택일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보이고자 한다. 그러나 권리들을 제도들로서 생각하기 위해서는 존 설이 Making the Social World에서 제시한 것보다 더 명확한(discriminante) 개념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 도입 자연법 사상에 따르면 토대적 권리들은 “자연”과 관련되어 있다. 이때의 “자연”을 ..

학업기록 2024.01.21

20240114_計

꽤 추운 날씨가 지속된 한 주였다. 한국의 청명한 겨울을 그리워 하는 나를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는 날씨였다. 깊이 숨을 들이쉬면 얼음장 같이 차가운 공기가 허파로 스미는 그런 날씨. 하눌은 유럽의 겨울답게 여전히 납과 같이 흐리지만 공기만큼은 상쾌했다. 몇 가지 점에서 이번 주는 저번 주의 연속이다. 『상처받은 사람들』에 이어서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있다. 계속해서 라틴어 수업을 듣고 있고, 미셸 빌리의 연구서를 읽으며 정리해놓고 있는데다, 여전히 하루에 『신학정치론』을 한 절씩 번역하고 있다. 어떤 계획들은 아직 몸에 익지 않아서 무산되어 버리고는 하지만 대체로 계획대로 삶을 잘 이끌어 가고 있다. 적어도 계획이 목표한 방향과는 일치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약간..

신변잡기 2024.01.15

퀜틴 스키너의 “의도”와 “영향력” 개념 및 방법론에 관한 짧은 노트

Analogia 22년10월 호(№2) 퀜틴 스키너 특집의 Florian Laguens이 쓴 서론을 짧게 정리한 내용 (https://ipc-paris.fr/recherche/publications-de-ler-ipc/) 스키너의 의도 개념 스키너의 “의도(intention)” 개념은 매우 독특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저자의 정신적 사태를 가리키지 않는다. 스키너는, 엘리자베스 앤스컴(1919-2001)을 따라, “의도”와 “동기(motifs)”를 구별한다. 먼저 동기는 저자가 글을 쓰도록 추동하는 선행조건들을 가리킨다. 한편 의도는 저자가 글을 쓰면서 하기 위해 시도하는 것을 가리킨다. 동기는 저자의 내적 상태에 해당하기 때문에 텍스트 자체 속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반면에 의도는 상..

학업기록 2024.01.11

Pierre Macherey, « Comment la philosophie est devenue “française” », ¶¶. 1-24 프로토콜 및 발제문 통합본

“프랑스 철학”이라는 표현은 괄호 치지 않고 사용하기에는 상당히 난처한 것이다. 우리는 마치 프랑스 음식, 이탈리아 음식 등을 말하는 것처럼 “프랑스 철학”에 관해 말하지만 음식이 철학이 아닌 것 이상으로 철학은 음식이 아니다. 미식 문화에서는 다양한 풍미를 지닌 식재료들의 산지를 알아맞추는 것이 뛰어난 미각과 교양을 보여주는 것인 반면에 철학의 경우, 최소한의 요소를 제외한다면, 한 철학이 일차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국적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사례는 이 점에서 시사적이다. 그는 유소년기 이후에는 프랑스에 아주 드물게 그것도 아주 잠시 체류했을 뿐이며 주로 네덜란드에 머물렀고 스웨덴에서 죽었다. 그가 제시한 코기토 원리와 충돌 법칙은 스톡홀름에서나 파리에서나 어디든지 적용될 수 있는 ..

학업기록 2024.01.09

20240107_計

어제의 술자리가 오늘 새벽 3시까지 이어져서 숙취가 가시지 않는다. 세미나도 두 개나 잡혀 있어 피로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뻗을 정도는 아니기에 기운을 끌어다가 일주일의 결산을 내어 본다. 이번 주에는 『신학정치론』 4장 번역을 마쳤다. 미셸 빌리의 연구서를 감탄하고 보석을 쓸어담는 기분으로 필기를 하며 읽었다. 라틴어 초급 강의를 시작했다. 공부는 썩 나쁘지 않게 나름대로 잘 끝마쳤다. 그러나 피로와 시간 부족 탓에 이번 주에는 운동 3회를 채우지 못 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상처받은 사람들』을 읽었다. 작가는 나에게 정교하게 제작된 오르골의 태엽을 감아 건냈다. 시간 속에서 서서히 전개되는 곡조의 통일성에 경탄하며 그가 들려주는 이 음악이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지 기대하며 책장을 조금씩 넘겼다..

신변잡기 2024.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