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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5_計

바람이 세차게 불던 밤이 지나고 일어나니 공기에서 겨울의 냄새를 미리 맡아볼 수 있었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어느덧 만성절이 손 뻗으면 감촉할 수 있을 정도 만큼 가까이 왔다. 작년에는 개강 후에 만성절 방학을 맞이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은데 올해의 감각은 사뭇 다르다. 학기의 시작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일까? 시월이 지나면 정말로 해야 하는 일들이 모두 마무리된다. 약간 걱정되는 것은 박사 등록 문제인데 아마 별 일 없이 잘 지나갈 것이다. 잔가지를 솔질하는 일이 계속 남아 있겠지만 굵직한 것들은 모두 끝내둔 채로 십일월의 만성절 방학에는 이번에도 또 어디론가 다녀오고 싶다. 지난 주에는 아주 불쾌한 일이 있었지만 적어도 내 마음속 소요는 쉬이 가라앉힐 수 있었고 지금은 잘 ..

신변잡기 2023.10.16

20231001_計

베이킹에 자꾸 실패해서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 몇 가지 가능성을 검토해보았다. 1. 오븐의 출력이 부족해서 2. 냉장고 성능 탓에 반죽을 1시간 휴지해두는 것으로는 부족해서 3. 엉뚱한 종류의 밀가루를 사용해서 4. 계량을 잘못해서 5. 반죽을 제대로 안 해서 예열도 충분히 하는데 빵이 제대로 부풀지도 않고 쿠기도 제대로 구워지지 않는다. 다음에 한 번 더 시도해보고 그때도 안 되면 무언가 제대로 된 대책을 강구해봐야겠다. 눈이 침침해서 노트북으로 장시간 작업하기가 어려워서 스탠드 등을 하나 장만했다. 아주 마음에 든다. 잘하면 올해 안에 턱걸이 10회 달성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신변잡기 2023.10.02

20230924_計

Seasons Changing Broccoli, you too? · Song · 2010 open.spotify.com 이번 주에 있었던 손에 꼽을 쾌거라면 역시 좋은 성적으로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이다. 목표했던 성적보다 훨씬 더 높은 점수를 받은 덕분에 늘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습관 탓에 어쩌면 장학금 기준에 맞춰 좋은 점수를 주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작은 의구심이 이번에는 피어날 여지조차 생기지 않았다. 이번 심사는 좋은 결과를 차지하고도 무척 고무적인 경험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나의 학업에 정확하고 건설적인 평가를 받을 기회가 무척이나 적었다. 하지만 얼마 전 심사에서는 지도교수 선생님과 심사위원 두 분 모두 내 논문을 매우 꼼꼼하게 읽고 그에 대해 정성스러운 코멘트와 질문 그리고 조언을 해주셨다...

신변잡기 2023.09.25

20230917_計

L’Amour, Les Baguettes, Paris Stella Jang · Song · 2021 open.spotify.com 나에게 파리라는 도시는 전혀 서정적인 장소가 아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이 도시는 나에게 환희를 일으키기도 비탄에 젖게 하지도 않는다. 파리는 그저 나에게 하나의 행정구역일 뿐이다. 여느 곳과 다를 것 없는 하나의 도시일 뿐이다. 다만 나에게 아무것도 더 정확히 말해 내가 바랐던 그 어떤 것도 내어주지 않은 도시이다. 어쩌면 긴 시간의 후회와 상실의 시간이 흘러간 공간이 마침 파리였다는 사실이 나에게서 이 도시에 대한 모든 감상을 벗겨내어 나를 이 도시에 완전히 무감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나는 파리의 서정성을 노래하는 모든 사람을 의심..

신변잡기 2023.09.18

글쓰기와 경험

한 편의 글을 끝냄과 동시에 모든 것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글쓰기의 경험과 함께 내 삶의 특정한 시기로 묶기에 충분한 어느 경험의 연속체 속에 間斷이 도입되었다. 종료된 시기, 다시 말해서, 이곳에 오기로 결정했을 무렵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간만큼 나 자신의 경험에 관해서 여러 가지 방식을 실험해보며 글로 남긴 시기는 여태까지의 생애 전체를 놓고 보아도 드물 것이다. 그 이전에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에 대한 글쓰기를 회피해왔으며 여전히 글쓰기는 꽤나 겸연쩍은 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계속 무엇인가를 썼던 까닭은 그것 외에는 모든 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모든 것이. 글은 읽히지 않았고 사람들의 말도 그것이 모국어이든 외국어이든 나는 들을 수 없었으며 응당 말할 수도 없었다. 나는 나 외의 다..

세쇄지담 2023.09.08

20230903_計 (부제: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널 싫어해도 나는 그래도 널 사랑해)

9월이다. 우뚝 서서 멈춰있는 것만 같았던 시간은 어느덧 쏜살같이 흘러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그러나 동시에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간에 다달았다. 점차 끝이 보인다. 상정했던 최악은 피해간지 오래이고 나를 안밖으로 둘러싼 환경도 많이 나아졌다. 논문을 완성했고 동료들의 교정과 피드백을 받았다. 최종 마감일까지 기한이 조금 남았고 그동안 조금 더 매만진 뒤에 제출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천천히 논문 전체를 다시 한 번 훑어 본 뒤에 나를 떠나지 않는 내 논문에 대한 느낌은, 조낸... 조낸 기괴하다. 였다. 논문이 주제를 집약적으로 다루기보다 핵심을 겉돌며 중언부언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어떤 대목은 그다지 필요 없어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주제와 무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챕터 사이의 유기적 ..

신변잡기 2023.09.04

Langage, mémoire, écriture

지도교수 강의계획서 번역 글쓰기를 정당화하는 혹은 요구하는 가장 명백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분명 말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글쓰기는 말을 혹은 말의 공백을 대신한다. 이 공백은 아주 단순하고 또한 구체적인 불가능성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 목소리가 닿는 범위 밖의 누군가에게 가령 멀리 떨어진 나라에 사는 누군가에게 글을 쓰는 상황이라거나 혹은 말을 할 때는 반드시 말하는 자가 앞에 있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글쓰기는 수신자가 자신이 원할 때 쓰여진 것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말보다 글쓰기를 선호하는 경우라거나 등등. 일반적으로 글쓰기의 수신자는 언제나 이론 상 가장 큰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에게 부쳐진 것을 읽거나 읽지 않을 자유 말이다. 또한 이 자유는 분명 누군가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학업기록 2023.09.02

20230827_計

자질구레한 일상부터 적어본다면 이번 주에는 우선 썩 괜찮은 홍찻잎을 사서 마셔보고 있고 주변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리는 경우가 점점 생기는데 왜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안 걸리는 건지 약간 의문에 젖기도 해보고 대학원 동료를 만나 한국 식당에 데려갔는데 홍상수 영화 이야기를 하고 논문 교정을 봐준 다른 동료에게는 도서관 휴게실에서 커피 한 잔이라도 사고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사소한 일들을 겪고 접했다. 어떤 작가의 작품을 전자책으로 구매했다. 이미 한 번 읽은 작품이라 망설였는데 번역문을 퇴고할 때 확인해야 할 용어가 한 가지 있어서 망설이다 결국 구매했다. 사실 그 용어는 다른 작면에서 더욱 전면적으로 등장하지만 막상 그 작품은 전자책으로 나오지 않아 다른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확인하려던 ..

신변잡기 2023.08.28

黑猫

어떤 슬픔은 그것이 슬픔인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아주 잔잔하게 흘러들어와 느린 속도로 마음에 와닿는다. 들려온 일이 사실이 아닐 수 있으며 여전히 다른 가능성이 열려 있을 수도 있다는 약간의 희망 섞인 기대가 슬픔의 느낌을 지연시키지만 느낌은 언젠가는 확실히 도착하여 괜히 더 오랫동안 품게 되고 그렇기에 깊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느리게 도착한 만큼 긴 시간 동안 천천히 애도할 수밖에 없는 상실의 자국을 남긴다. 어느 날부터 별장에 종종 찾아오던 검은 고양이 쫄보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느닷없이 찾아온 일은 아니다. 쫄보와의 만남이 길었던 만큼 쫄보의 나이를 정확히 알 수 없더라도 그 아이가 야생 고양이치고 이미 상당히 오래 살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출국하기 전부터 어쩌면 이번에 보는 것이 ..

세쇄지담 2023.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