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기록

퀜틴 스키너의 “의도”와 “영향력” 개념 및 방법론에 관한 짧은 노트

RenaCartesius 2024. 1. 11. 00:19

Analogia 22년10월 호(№2) 퀜틴 스키너 특집의 Florian Laguens이 쓴 서론을 짧게 정리한 내용

(https://ipc-paris.fr/recherche/publications-de-ler-ipc/)

 


 

스키너의 의도 개념

 

스키너의 “의도(intention)” 개념은 매우 독특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저자의 정신적 사태를 가리키지 않는다. 스키너는, 엘리자베스 앤스컴(1919-2001)을 따라, “의도”와 “동기(motifs)”를 구별한다. 먼저 동기는 저자가 글을 쓰도록 추동하는 선행조건들을 가리킨다. 한편 의도는 저자가 글을 쓰면서 하기 위해 시도하는 것을 가리킨다. 동기는 저자의 내적 상태에 해당하기 때문에 텍스트 자체 속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반면에 의도는 상호텍스트성의 노력에 따라 저자가 쓴 텍스트 속에서 발견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과 오스틴의 영향 하에서 스피커는 이 의도를 저자가 글을 쓰면서 행하는 것으로서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스키너에게 해석한다는 것은 바로 글 뒤에 숨겨져 있는 의도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의도는 사회적 행위로서 맥락의 고려 속에서 있는 것으로 상정되며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는 어떤 대화에 참여하는 의사소통의 공간으로서 이해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말하는 것, 더 정확히 말해서,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텍스트의 대화상대자가 누구인지 고려하는 것은 바로 저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스키너의 영향력 개념

 

과연 정확히 어떤 조건에서 한 저자가 다른 저자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정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영향력에 관해 말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P₁)이 다른 사람(P₂)에게 미칠 수 있는 인과적 행위를 평가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때 당연히 P₁이 P₂보다 후대 사람이어서는 안 되며 이 대전제 위에 스키너는 두 사람 사이의 영향력을 주장하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조건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C1] P₁의 주장과 P₂의 주장 사이의 진정한 유사성이 있어야 하며,

[C2] 대안적 원인들을 가능한 제거해야 하는데 이것은,

[C2.1] P₂가 P₁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서 문제의 주장을 발견했을 경우(예컨대 P₁과 P₂ 모두 제3의 저자에게 영향을 받은 경우)의 개연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리고

[C2.2] P₂가 문제의 주장을 독립적으로 발전시킬 개연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뤄진다.

 

이 조건들에 입각해서 저자들 사이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일은 상당한 신중함을 요구한다. 많은 경우 우리는 P₁의 주장을 읽고나서 그것이 P₂의 주장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이유만으로 두 사람 사이의 영향력을 단정짓고는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영향력을 단정하는 것은 저자들 사이의 실제적 영향 관계를 입증하기보다는 단순히 독자가 한 저자를 읽고 다른 저자를 생각하게 됐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지나지 않는다.

 

영향력을 평가하는 이러한 스키너의 기준은 연구의 지평을 고정하는 규제적 측면을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저자들 사이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일은 언제나 가설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P₂가 직접 P₁으로부터 받은 영향력을 인정할 때처럼 두 저자 사이에 실제적 영향력을 뒷받침해주는 경우도 있다 ― 그러나 이 경우 역시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저자 스스로 자신이 받은 영향에 관해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P₁과 P₂ 사이의 영향력에 관해 말하기 위해서는 그들 사이의 교류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 두 사람이 직접 대화했다거나 혹은 서신교환을 했다는 직접적 교류의 정황이나 혹은 제3의 인물이 P₂ 에게 P₁의 논변들을 보고하는 경우나 P₂ 가 P₁의 저작들을 읽었다는 간접적 교류의 정황이 있어야 한다.

 

스키너의 방법론과 알키에의 방법론 사이의 비교

 

프레데릭 보름스가 발전시킨 공통의 문제들을 통해 구조화되는 관계망 속에서 텍스트들을 사유하는 것으로 이뤄지는 “순간(moment)”은 텍스트에 대한 내재적(internaliste) 독해 방식과 외재적(externaliste) 독해 방식을 대립시키는 것의 잘못을 지적한다. 이러한 보름스의 방법론은 일종의 맥락주의의 한 형태를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조금 더 예전의 철학자인 페르디낭 알키에(1906-1985)의 방법론을 스키너의 방법론과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알키에는 “작품의 구조들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지향하는 게루의 방법론에 반대했다. 왜냐하면 알키에가 보기에 게루는 철학자의 텍스트를 한 체계 내로 총체화함으로써 정합성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읽기보다는 자신이 상정한 체계에 부합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정합성의 추구는 저자의 텍스트에 해석의 격자를 부과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 격자 바깥으로 돌출하는 텍스트 속의 모순들이 해명되기보다는 아예 무시된다. 이 점에서 알키에는 스키너와 마찬가지로 정합성의 신화를 비판한다. 정합성에 맞서 알키에가 제시하는 해석의 목표는 바로 저자를 “이해하는 것(comprendre)”이다. 알키에 역시 텍스트를 일종의 대화로서 간주하며 철학사가의 연구대상은 개념적 추상이 아니라 철학자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개진한 관념들이다. 한 철학자의 텍스트는 다른 철학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제시하는 대화로써 쓰여졌다. 따라서 알키에가 보기에 해석이란 한 철학자가 그의 동료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의식적인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의도로서 고려되어야 하며 철학자의 내적 정신의 전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그의 삶과 경험을 동시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철학의 영원한 문제는 없다”라고 주장하는 맥락주의자 스키너와 달리 알키에는 “철학의 영원성”에 관해 말한다. 물론 알키에의 이 테제 역시 더 논의되어야 할 것이며 맥락화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