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80

20240204_計

굉장히 빠르게 시간이 지나갔다. 논문도 고작 한 편 정도 밖에 읽고 정리하지 못했다. 원고 교정 때문에 시간을 썼기 때문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의욕이 그렇게 많이 나지 않았던 한 주였다. 다만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꽤 길었고 또한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그 외의 일로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권에 돌입했다는 것 정도로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주였다. 하지만 마음의 파고는 꽤 요동이 쳐 크게 부침을 겪기도 했다. 지독한 쓸쓸함 잠시 느끼기도 하였고 지독한 악랄함 혹은 지독한 옹졸함 아무튼 어떤 지독함을 곁눈질로 엿보았다. 마음의 방파제를 단단히 쌓아야 할 필요를 느낀다. 살아가면서 내내 풀어 나가야 할 지독한 숙제가 아닌가 싶다. 운동 3회를 채우지 못 했지만 예정대로 다음 주는 운동을 쉬고 그..

신변잡기 2024.02.05

20240128_計

늦잠을 자고 일어나, 운동을 먹고, 끼니를 차려먹은 정도만 했을 뿐인데 벌써 어스름조차 어둠에 삼켜진 밤이 되었다. DUMAS에 대강 오탈자만 수정한 논문을 제출하고, 아틀리에 발표를 한 달 미루었더니 마음이 약간 해이해진 탓인지 그다지 손에 잡힌 무엇인가를 하지는 않았다. 다만 재교를 봐야 할 원고가 넘어왔고 『신학정치론』 5장 번역을 마쳤다. 그 외에는 딱히 무슨 일을 했던가? 우선 초코 머핀을 만들어 보았다는 것과 계급횡단자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회에 참석했다는 것이 기억난다. 아직까지는 프랑스인 연구동료들과 몇 마디 말을 나누어도 내가 무언가 흥미로운 것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대화를 했다는 느낌보다 상대 쪽에서 외국인에 대한 의례적인 배려를 했다는 인상만이 있다. 언젠가 그 벽을 넘을..

신변잡기 2024.01.29

20240121_計

도스토옙스키는 얼마 읽지 못하였다. 삶의 문제와 멀다고 느끼기 때문일까. 페이지를 넘기기 어렵다. 첫 시도를 했을 때에도 이런 느낌이었지. 그렇다면 반대로 바로 그때 『상처 받은 사람들』을 읽었다면 어떠했을까? 미셸 빌리의 홉스 챕터를 다 끝내고 몇 개의 학회에 참여했으며 하지만 그럴 듯한 결과를 정리하여 내놓지는 못했다. 그 점이 못내 못마땅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학업 면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삶의 측면에서는 해묵은 것들을 청산하고 해소할 수 있었던 한 주였다.

신변잡기 2024.01.22

20240114_計

꽤 추운 날씨가 지속된 한 주였다. 한국의 청명한 겨울을 그리워 하는 나를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는 날씨였다. 깊이 숨을 들이쉬면 얼음장 같이 차가운 공기가 허파로 스미는 그런 날씨. 하눌은 유럽의 겨울답게 여전히 납과 같이 흐리지만 공기만큼은 상쾌했다. 몇 가지 점에서 이번 주는 저번 주의 연속이다. 『상처받은 사람들』에 이어서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있다. 계속해서 라틴어 수업을 듣고 있고, 미셸 빌리의 연구서를 읽으며 정리해놓고 있는데다, 여전히 하루에 『신학정치론』을 한 절씩 번역하고 있다. 어떤 계획들은 아직 몸에 익지 않아서 무산되어 버리고는 하지만 대체로 계획대로 삶을 잘 이끌어 가고 있다. 적어도 계획이 목표한 방향과는 일치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약간..

신변잡기 2024.01.15

20240107_計

어제의 술자리가 오늘 새벽 3시까지 이어져서 숙취가 가시지 않는다. 세미나도 두 개나 잡혀 있어 피로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뻗을 정도는 아니기에 기운을 끌어다가 일주일의 결산을 내어 본다. 이번 주에는 『신학정치론』 4장 번역을 마쳤다. 미셸 빌리의 연구서를 감탄하고 보석을 쓸어담는 기분으로 필기를 하며 읽었다. 라틴어 초급 강의를 시작했다. 공부는 썩 나쁘지 않게 나름대로 잘 끝마쳤다. 그러나 피로와 시간 부족 탓에 이번 주에는 운동 3회를 채우지 못 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상처받은 사람들』을 읽었다. 작가는 나에게 정교하게 제작된 오르골의 태엽을 감아 건냈다. 시간 속에서 서서히 전개되는 곡조의 통일성에 경탄하며 그가 들려주는 이 음악이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지 기대하며 책장을 조금씩 넘겼다..

신변잡기 2024.01.08

20231231_計

연말연시 모임으로 바빠서 조금 늦게 올리는 지난 주의 신변잡기 돌이켜보면, 시작이 정말 좋지 않은 한 주였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지난 주의 교통사고보다 나를 더 강하게 타격하는 충격으로 월요일이 끝났으니 말이다. 나는 원래의 판단을 고수해야 했다. 편치 않은 감정이 마음 한켠에 자리 했지만 이런 저런 부대끼는 일들이 꽤 있었고 그것은 또 돌이켜보면 다소 긍정적으로 서술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예기치 않은 기나긴 토론 또는 논쟁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다시 빠져나오는 일이 있었고 예기치 못한 만큼 원래는 거리를 두고자 마음 먹었지만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친밀감이 생기는 일도 있었으며, 도서관 근처의 식당들을 조금 더 잘 알게 되었고, 라틴어 공부를 재개하게 되었으며, 도스토옙스키의 『상처받은 사..

신변잡기 2024.01.03

20231224_計

크리스마스 이브 모임에 참석하느라 바빴던 탓에 하루 늦게 한 주의 기록을 갈무리한다. 월요일. 이번 주의 시작은 교통사고였다.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을 향하던 중 급정거한 앞 자전거를 피하려다 그 자전거의 페달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중심을 잃었다. 최대한 중심을 회복하려고 했지만 비틀거리다 결국 교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인 차량에 자전거를 박고 넘어져버렸다. 다행이 어딘가 깨지거나 찢어지거나 쓸린 곳은 없었다. 타박상에 따른 약간의 통증만 느껴졌다. 운전자는 나를 걱정해주었고 아무튼 그렇게 하루를 그리고 한 주를 시작했다. 사고가 있은 후 하루가 지난 날부터 며칠 간은 몸이 죄이듯이 욱신거리는 통증이 조금 더 더해졌다. 그 탓에 이번 주의 컨디션은 그다지 좋지 못했고 공부의 양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운동은 잠깐..

신변잡기 2023.12.26

20231217_計

엄지 수난시대라고 해야 할까. 지난 주에는 양파스프에 넣을 바게트를 썰다 빵칼에 왼쪽 엄지를 베이고 이번 주에는 오래 되어 군데군데 크랙이 있는 핸드폰 액정을 터치하다가 오른쪽 엄지가 살짝 베였다. 엄지는 아니지만 오늘은 또 침대 시트를 교체하다가 왼손 중지의 손톱이 들려 피를 보았다. 이번 주는 허투로 살지는 않았지만 공부는 많이 하지 못 했다. 연어 스테이크를 굽고 라클레트 파티를 기획하고 개신교 교회에서 열린 합창단 공연을 보러 갔으며 세미나 촬영을 하고 양파스프를 한 번 더 해보기도 했다. 요리도 공부도 다 마찬가지라 하면 할 수록 더 실력이 느는 부분이 있다. 처음 할 때보다 시간도 더 단축되고 훨씬 간단한 동선으로 요리를 해냈다. 그런 반면에 공부는 제대로 하지 못 했는데 우선 마감 기한 내에..

신변잡기 2023.12.18

20231210_計

원하는 만큼의 성실성을 발휘하지는 않았지만 바쁘다면 바쁘게 보낸 한 주였다. 푸코의 Le Discours Philosophique와 관련된 학회에 참석했고 에티엔 발리바르와 마틴 자르 등의 발표를 들었다. 로크의 『인간지성론』 1권(한국어판 기준)을 끝냈고 2권을 읽기 시작했다. 양파 스프를 끊이고 익혔다. 다만 바게트를 자르다 빵칼에 손이 베였다. 운동 목표치를 채웠다. 이조김치에서 배추김치와 갓김치를 주문했다. 번역문 검토를 시작했다. 진저 스냅을 구웠고 수명이 다한 스탠드 등과 거실 등을 각각 교체했다. 필요 없는 책들을 추려냈고 냉장고의 식재료도 요리할 것은 요리해서 먹고 자리만 차지하던 녀석들을 싹 정리했다. 지금은 공부 모임의 두 번째 회차를 무사히 끝냈고 블렌디드 위스키에 입문하기 전 중간 ..

신변잡기 2023.12.11

20231203_計

이번 주에는 비교적 일기를 촘촘히 썼다. 막상 아주 자세히 기록한 것은 없지만 남아있는 기록 덕분에 한 주의 기억을 비교적 생생히 되짚어 볼 수 있다. 비로소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잠시 뒤틀렸던 기존의 삶의 질서를 되찾아 가고 있다고 느껴진다. 『신학정치론』 20장 번역을 마쳤다. 중간에 상당 부분을 건너 뛰긴 했지만 16장부터 20장까지 정치와 관련된 부분의 논고를 나-불 대역본으로 읽고 한국어로 옮긴 셈이니 꽤 길었던 대장정의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평소라면 회포를 풀겠지만 이번 주에는 위스키를 연거푸 마셔서 절제하려고 한다. 안주로 곁들인 구운 아몬드가 맛있는 탓에 과음이나 폭음은 아니지만 피로가 회복되지 않을 정도로 연속으로 마셨더니 지금은 영 기력이 없다. 다음 주에는 당장 내일부터 중요한 학회..

신변잡기 2023.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