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20231224_計

RenaCartesius 2023. 12. 26. 02:32

크리스마스 이브 모임에 참석하느라 바빴던 탓에 하루 늦게 한 주의 기록을 갈무리한다. 
 
월요일. 이번 주의 시작은 교통사고였다.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을 향하던 중 급정거한 앞 자전거를 피하려다 그 자전거의 페달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중심을 잃었다. 최대한 중심을 회복하려고 했지만 비틀거리다 결국 교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인 차량에 자전거를 박고 넘어져버렸다. 다행이 어딘가 깨지거나 찢어지거나 쓸린 곳은 없었다. 타박상에 따른 약간의 통증만 느껴졌다. 운전자는 나를 걱정해주었고 아무튼 그렇게 하루를 그리고 한 주를 시작했다. 사고가 있은 후 하루가 지난 날부터 며칠 간은 몸이 죄이듯이 욱신거리는 통증이 조금 더 더해졌다. 그 탓에  이번 주의 컨디션은 그다지 좋지 못했고 공부의 양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운동은 잠깐 쉬었으며 원래 계획했던 일 가운데 하지 못한 채 넘겨버린 것들이 많다.
 
그렇지만 두 번의 파티를 열었다. 한 번은 나의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해서 다함께 라클레트를 먹었고 다른 한 번은 다른 사람의 집에 초대받아 다녀왔다. 라클레트 파티에서는 아페리티프로 생에 첫 포트 와인을 마셔보았다. 타인의 집에 방문했을 때는 뵈프 부르기뇽과 여러 종류의 파스타가 포함된 좋은 식사를 대접받았고 또한 내가 요리한 칠리 콘 카르네를 선보이고 좋은 평을 받았다. 같이 보드게임을 하고 빔프로젝터로 ⟨블루 자이언트⟩를 관람하기도 했다. 
 


 
공정한 사람은 고립되기 마련이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표적이 되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칙을 이유로 누군가의 손을 들어준다고 해도 그것이 그 누군가의 편에 선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에 그 누군가와 다른 사람들의 편에서 공격을 받기 쉽다. 그러나 손을 들어주었던 그 누군가의 편의 도움을 받기는 어려우며 또한 설령 그런 도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사양하는 것이 공정하기 마련이다. 불편부당하다는 것은 모든 편으로부터 똑같은 거리를 유지한 채 떨어져 있다는 것. 그 누구와도 다른 누구보다 더 가깝거나 멀지 않다는 것. 결국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내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우리를 강하게 억죄는 친소 논리로부터 벗어나 공정하게 판단하고자 한다면 이 점을 명심해야 할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도덕성을 사람을 사귀는 데 꽤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다. 특정한 도덕적 코드에 부합하는지 아닌지가 우리가 누군가와 사귈지 사귀지 않을지를 규정한다. 특정 집단의 코드를 만족시키지 않는 자, 자신들의 편에 속하는 표식을 지니고 있지 않거나 그것에 긍정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자를 우리는 사귀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공정성은 적어도 사교의 장에서 사랑 받는 가치는 아닌 것이고 그 점에서 모랄리스트들이 탐구하는 관습의 뉘앙스가 강하게 들어가 있는 '도덕'에 부합하는 가치는 아닌 것이다. 
 


 
 
나는 왜 물러섰을까? 마음이 약해서. 혹은 자기 자신을 늘 중심에 놓고 그곳으로 편벽되게 만드는 자기애로 인해 나 자신을 타인을 대하듯 공정하게 대하지 못해서. 요컨대 나도 내가 내심 비난했던 사람들만큼 비겁하고 나는 나 자신과 너무 가깝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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