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20231203_計

RenaCartesius 2023. 12. 4. 04:58

이번 주에는 비교적 일기를 촘촘히 썼다. 막상 아주 자세히 기록한 것은 없지만 남아있는 기록 덕분에 한 주의 기억을 비교적 생생히 되짚어 볼 수 있다. 비로소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잠시 뒤틀렸던 기존의 삶의 질서를 되찾아 가고 있다고 느껴진다. 

 

『신학정치론』 20장 번역을 마쳤다. 중간에 상당 부분을 건너 뛰긴 했지만 16장부터 20장까지 정치와 관련된 부분의 논고를 나-불 대역본으로 읽고 한국어로 옮긴 셈이니 꽤 길었던 대장정의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평소라면 회포를 풀겠지만 이번 주에는 위스키를 연거푸 마셔서 절제하려고 한다. 안주로 곁들인 구운 아몬드가 맛있는 탓에 과음이나 폭음은 아니지만 피로가 회복되지 않을 정도로 연속으로 마셨더니 지금은 영 기력이 없다. 다음 주에는 당장 내일부터 중요한 학회가 계속 있어 오늘은 음주를 자제하려고 한다. 

 

그래도 이번 주에는 운동을 재개하여 최소 목표를 채웠고 『인간지성론』 읽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공부 모임에서 발표할 글을 이미 준비한 터라 꼼꼼이 정리하며 공부한 것은 특별히 없지만 나쁘지 않은 생산성을 보인 한 주였다. 다만 지금보다 더 연구에 쏟는 시간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우선 지금은 어학에 쏟는 시간을 조금씩 더 늘려가고자 한다. 

 

오늘은 마크 로스코 전시회에 다녀왔다. 내가 전시회를 가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작품 감상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미술관이라는 장소에서 돌아다니며 감상하는 행위를 즐거워한다는 이유가 더 클 것이다. 이 점에서 로스코 전시회는 나의 취향에 꼭 맞는 셈이다. 거대한 캔버스에 그보다 더 거대한 빛과 정이 응축된 그의 작품은 캔버스가 걸린 공간을 장엄하게 만든다. 그로써 어쩌면 작품보다 그 공간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름답고 즐거운 시간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그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결코 사진 한 장에 온전히 담길 수 없다. 그의 작품이 온전히 펼쳐지기 위해서는 미술관 전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마크 로스코 스스로가 이러한 미술 작품의 공간성에 관하여 매우 정확하게 인식하고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새로운 음악을 듣다가 문득 나의 음악 취향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어떻게 하면 내 취향에 대한 적확한 규정을 내릴 수 있을까? 나는 언어를 언어로 바꾸는 것 외에 다른 것들―예를 들면 특히 맛에 관해서―을 언어로 옮겨두는 일에는 완전히 젬병인지라 어떤 용어로 내 취향을 서술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음악 취향과 관련한 당혹스러움은 단지 설명의 어려움만이 아니라 나 자신도 가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느낀다는 데서 더욱 커진다. 오늘 새롭게 접한 음악은 분명 좋았지만 내가 평소에 즐겨 듣던 음악과도 결이 다르고 내가 이런 스타일을 좋아했나 싶을 정도로 원래의 '취향'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오늘의 음악을 좋다고 느꼈다면 그건 이와 비슷한 결의 음악을 좋아하는 취향을 나도 모르게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 음악을 통해 내 취향이 한결 더 새로워진 것일까? 아마도 로크라면 이번 기회에 취향의 범위가 늘어났다고 답하겠지만 딱히 로크에 동조하지 않는 나로서는 아직 마땅한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생각만 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 생각보다는 차라리 나의 생각이든 남의 생각이든 글로 옮겨적는 시간을 늘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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