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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Blossfeldt의 사진을 접하고(20220504)

식물을 아주 가까이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라고 할 만한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관찰하다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식물의 싱그러움보다는 마치 도형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이질감을 느끼는데 또 한편으로는 식물의 잎맥은 마치 혈관 같아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생동감이 느껴지고 그래서 징그러워진다. 그런데 이런 추의 체험 때문에 괜히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싶어지고 그렇게 식물에게서 식물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무엇인가를 자꾸 발견하게 된다.

세쇄지담 2022.07.14

박기영의 ⟨내가 생각했던 세상은..⟩을 듣고서(20220505)

박기영의 내가 생각했던 세상은.. Apple Music에서 박기영의 내가 생각했던 세상은.. 음악을 감상하세요. 1999년. 길이: 4:26. music.apple.com 루소에게 적잖이 동질감을 느끼는 이유는 투명성에 대한 집착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인데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기만 하면 모든 불화가 씻은듯이 사라질 거라는 루소의 순진무구함이 나를 참 부끄럽게 하면서도 그런 해맑은 믿음을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없기에 그에게 어떤 속박감을 느낀다. 물론 투명성을 향한 루소의 강박은 무척 심각한 것이어서, A가 B에 대한 한 대단찮은 뒷담을 B에게 전달하는 등 사람들 사이에 있을 수밖에 없고 성숙한 사람이라면 다들 알아서 묻어둘 작은 불만까지도, 심지어 ..

세쇄지담 2022.07.14

⟨타이페이 스토리⟩를 보고서(20220511)

꽤 오랫동안 정체감 속에 지내서 그럴까. 어딘가에 엉겨있는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주 낯설지는 않았던 까닭은. 그래도 영화에 아주 몰입할 수는 없었는데 가끔씩 나는 타인의 이야기가 별로 필요하지 않거나 아예 흥미가 사라지는 때가 있는 듯하다. 관람하는 내내 수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작품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한 것 같다. 어쩌면 영화 자체가 적적한 분위기를 연출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감독이 인물들을 바깥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영상에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주기적으로 타인에게 집중하기 어려운 때가 찾아오는 내 특성 탓인 것 같기도 하다. 오늘도 영화를 보겠다고 다짐해놓고 막상 너무 보기가 싫었다. 결국 본 게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결말은 조금 별로였다..

세쇄지담 2022.07.14

20220710_計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으로 한 주를 마무리하다. 여름 저녁 공기를 마시고 약간의 땀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담배와 술이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담배는 끊은지 꽤 되었고 술은 절제하고 있다. 대신 음악으로 여백을 채웠다.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Nocturne No. 13 in C Minor, Op. 48, No. 1 Apple Music에서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Nocturne No. 13 in C Minor, Op. 48, No. 1 음악을 감상하세요. 2005년. 길이: 5:08. music.apple.com 최근에는 노션으로 논문을 정리하려고 시도했는데 며칠 전에야 나는 손필기가 더 손에 익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노션으로 정리하다보면 내가 너무 세부적인 것까지 일일이 기록하려고 ..

신변잡기 2022.07.11

Valtteri Viljanen (2008), Spinoza's Essentialist Model of Causation에 대한 짧은 기록

이 논문에서 Viljanen의 목표는 스피노자 철학에서 인과모델이 기계론적 자연학에서 채택된 작용인과라기보다는 기하학과 형상인과에 영감을 받아 한 사물의 본질로부터 그 사물의 여타 속성들이 '유출'되는 형태의 본질주의적 인과를 기초로 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의 4원인 가운데서 스피노자는 작용인은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으며, 목적인은 적어도 신과 관련해서는 거부하고 있고, 질료인의 용어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스피노자는 기존의 작용인-목적인 사이의 관계(목적을 향해 현실화되가는 변화가 작용인)가 목적인 비판과 함께 사라지고 작용인이 형상인과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스피노자 체계에서 작용인이, 형상인이, 그리고 이 둘 사이의 새로운 연관 관계가 정확히 무엇인지 ..

논문준비 2022.07.10

진행상황 기록

2022. 07. 04. 초벌 번역을 끝내다. 2022. 07. 05. Stephen Zylstra의 논문을 미리 얻다. 메일 확인을 하고도 며칠 답장이 없어 가망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격려의 말과 함께 논문을 보내주었다. 2022. 07. 06. 구(舊) 지도교수에게 보냈던 메일의 답장을 받다. 앞으로는 논문이나 번역을 새로 하기보다는 유학기간은 축적의 시간이니 독서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비슷한 조언을 전에도 받은 적이 있어서 새길만한 조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독한 유학생활 동안 "살아있다"는 비명을 지르기보다 살아가면서 쌓아가는 게 더 낫다는 조언이었다. 2022. 07. 07. 입학과 번역 관련해서 미래 지도교수에게 보냈던 메일의 답장을 받다. 학기 시작 때 논문 주제와..

신변잡기 2022.07.09

레비나스, 『존재와 다르게』 쪽글

대학원 들어와서 처음으로 쓴 발제문인데 좀 성기기도 하고.. 지금 만약 수업에서 발제를 한다면 번역 관련에 대한 저런 삐딱한 지적은 안 할 것 같다.. 1. 레비나스와 현상학 리투아니아 출신의 철학자 레비나스는 프랑스에 현상학을 최초로 소개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1932년 레이몽 아롱이 에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에게 현상학에 대해 이야기하기 이전부터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에 몰두했다. 1930년『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50년 무렵부터 자신의 독자적인 철학의 노선을 개척하기 전까지 레비나스는 오랜 기간 동안 충실한 현상학 연구자로서 활동했다. 하지만 이러한 레비나스의 이력이 그가 이 기간 동안 후설과 하이데거의 철학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레..

학업기록 2022.07.09

Chantal Jaquet, ⟨영원성과 불멸성: 유한 양태들의 지위⟩ 발제

새삼 돌이켜보니.. 작년 봄학기에 스피노자 영원성 수업 청강했던 게 그토록 영원성 타령하게 된 원인이었구나.. 도입부 (pp. 75-76; ¶¶. 1-2) 스피노자는 『윤리학』 5부 후반부 (정리 21~42)에서 인간 정신의 영원성, 더 정확하게는 인간 지성의 영원성에 관해 다룬다. 스피노자의 이러한 행보는 『윤리학』 2부에서 주장한 심신평행론과 상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스피노자는 『윤리학』의 5부 후반부와 앞부분과 사이에 어떠한 단절도 없는 것처럼 논의를 이어간다. (¶. 1) 흥미로운 점은 스피노자가 「형이상학적 사유」에서 시간적 지속과 무관한 의미의 영원성을 오직 신만이 보유하고 있는 성질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형이상학적 사유」 에서 스피노자는 유한한 인간의 정신이..

학업기록 2022.07.05

Vincent Carraud (2002), Ratio seu Causa: Spinoza, CAUSA SIVE RATIO에 대한 짧은 기록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 책에서 까로의 바라보는 스피노자는 중세 스콜라 철학으로의 은밀한 회귀를 감행하는 철학자, 더 정확히 말한다면, 데카르트가 획득한 성취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용함으로써 스콜라 철학의 그렇기 때문에 충분이유율의 성립을 향한 근대철학의 발전 노선에서나 더 일반적인 시각에서나 주류로부터 이탈하고 있다. 까로가 스피노자의 원인 개념이 형상인에 근거한다고 고려하는 근거: 1) 스피노자는 사물의 원인이 그 사물의 본질과 정의(定義)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 De Anima Ⅱ, 2(413 a 13-15)를 참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의 원인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형상인을 의미한다. 2) 『윤리학』 1부 공리 4에 따르면 결과에 대한 인식은 원인에 대..

논문준비 2022.07.05

알베르 카뮈, 『최초의 인간』

학업과 관련해서 받은 조언 가운데 한 가지는 어떤 사상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 사람에 대한 해설서를 찾아보기보다는 그가 참조하고 있는 문헌들을 읽음으로써 어떠한 배경에서 말하고 있는지 파악해보라는 것이다. 번역을 맡은 책의 초벌 번역이 거의 끝났다. 다음주 월요일이면 마칠 수 있을 것이다. 번역어 통일은 커녕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비문 투성이이기 때문에 손볼 곳이 많을 원고이겠지만 우선 책 전체의 한국어 원고가 완성된 셈이다. 남은 시간은 윤문과 역주 달기 그리고 역자 해제 작성에 사용하려고 한다. 그리고 저자가 참조하고 있는 책을 천천히 읽어보려고 한다. 오랫동안 문학작품을 등한시하기도 해서 최근에는 소설을 읽고 싶었다. 일본문학이 끌려서 예전에 이북으로 구입해둔 나츠세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독서기록 2022.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