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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솔리테어 같은 것

솔리테어, 정식명칭은 클론다이크. 윈도우 기본게임으로 설치되어 있는 이 카드놀이에 대한 최초의 인상을 가졌던 순간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마도 엄마가 플레이하는 장면인 것 같다. 게임을 클리어하면 현란하게 뒤섞이는 카드패가 어렸던 나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나는 이 게임을 하는 방법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게임을 실행해놓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가 이내 종료하고는 했다. 그러던 내가 조작법을 익히게 된 건 ―어떻게 배웠는지는 아무리 떠올려 보아도 역시 모르겠다― 아마도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이 끝난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부과되는 것이 없어 무척 심심하고 무료한 때였다. 반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막 보급되기 시작했던 스마트폰으로 각자 게임을 하는 걸로 우리는 시간을 떼웠다. 우리는 룰 더 스카이 따위..

세쇄지담 2022.09.04

Rotten Apples

새로 들인 식물들은 잘 자라고 있다. 몬스테라의 잎이 약간 상한 상태로 배송이 와서 걱정했었는데 잘 돌봐주니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이번에는 비료도 사고 배양토도 따로 구매해서 사용했다. 한데 몬스테라에는 독성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아이 곁에는 두지 말라고 한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강아지들이 몬스테라 잎을 뜯어먹었다며 걱정하는 글이 잔뜩 나왔다. 올리브 나무를 분갈이 해줄 때 사용한 흙에서 자라난 이름모를 잡초는 클로버였던 것 같다. 뒷마당 가는 길에는 사과나무가 한 그루 심겨져 있다. 봄이 되면 나무는 꽃을 맺고 여름이 되면 열매를 떨군다. 사과 몇 알이 마당에 이리저리 나뒹군다. 그러다 쪼그라들기 시작하고 이내 부패한다. 오며가며 썩은 사과들을 본다. 수분이 죄 빠져나가 볼품없어진 흑변한 사과들..

세쇄지담 2022.08.29

20220828_計

듣다보면 우습다가도 슬퍼지는. 더 오래 듣고 있으면 노이로제 걸릴 것 같은.. 2022. 08. 22. (월) 자전거로 BnF를 왕복해서 다녀오다. L을 만나다. 연구에 도움이 될만한 유용한 책, The Bloomsbury Compainon to Spinoza를 발견하다. 2022. 08. 23. (화) Bnf 가다. SEP 수아레즈 항목을 읽다. 연구계획에서 필요한 인용들을 미리 찾아두다. 운동 재개하다. F를 만나다. 2022. 08. 24. (수) 세미나 재개하다. 행정등록 완료하다. SEP 미셸 앙리 항목을 읽다. 2022. 08. 25. (목) 분갈이를 해주다. 벨리브 문제로 기진맥진하다. 2022. 08. 26. (금) BnF 가다. 연구계획서 개요를 짜다. 주라바빌리치 논문을 읽다. 도서관에..

신변잡기 2022.08.29

20220821_計

Pietro De Maria의 Nocturne No. 13 in C Minor, Op. 48, No. 1 Apple Music에서 Pietro De Maria의 Nocturne No. 13 in C Minor, Op. 48, No. 1 음악을 감상하세요. 2009년. 길이: 7:09. music.apple.com 2022. 08. 15. (월) '마침내' 냉장고 성에 제거를 하다. 2022. 08. 16. (화) 에펠탑을 보다. 2022. 08. 17. (수) 관엽식물이 도착하다. 파리 이곳저곳을 관광하다. 2022. 08. 18. (목) 번역 1교를 끝내다. 2022. 08. 19. (금) 체류증 수령하다. BnF 도서관 카드를 수령하다. 게루 주석서 부록 13, 14를 읽다. 라몽의 « Diction..

신변잡기 2022.08.22

음과 양

홍상수 영화 속 인물들은 그들이 아무리 많이 입을 열더라도 실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주저하고 어물거리고 말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대에게 여러 문장을 발음하지만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으며 상대에게 시선을 던져 쳐다보기는 하지만 상대를 바라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의 진심은 말의 바깥으로 미끄러지고 새어나간다. 말해지지 않는 그들의 진심은 그들이 말을 하는 틈 사이에 말 아닌 것으로만 전달된다.그들의 말에는 넋이 없다. 김빠진 맥주처럼 맥빠진 말만을 되풀이하는 리빙데드 또는 정신 없는 자동기계 장치, 그것이 홍상수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인물들의 정체이다. 만약 홍상수의 영화에서 누군가 진심을 언어로 표현하기로 결심한다면 홍상수는 그 인물이 그 말을..

세쇄지담 2022.08.19

20220814_計

2022. 08. 08. (월) 공백 2022. 08. 09. (화) 관엽식물로 몬스테라 델리키오사 그리고 차메도리아를 주문하다. 탁상시계를 고치다. 운동을 재개하다. 2022. 08. 10. (수) 생 제르망 데 프레의 수도원을 방문하다. 소개하고 싶은 책을 한 권 발견하다. 체류증이 '마침내' 발급되다. 랑데뷰를 잡다. 『구별짓기』 하권을 끝내다. 홍상수의 ⟨인트로덕션⟩을 보다. 2022. 08. 11. (목) 운동을 다시 쉬다. 피쉬바흐의 책을 읽다. 마당에서 책을 읽다 문득 장미나무의 가시가 더 돋아난 것을 보다. 2022. 08. 12. (금) ⟨우연과 상상⟩을 보다. 편지를 개봉하다가 종이에 손가락을 베다. 2022. 08. 13. (토) 피쉬바흐의 책을 일독하다. 2022. 08. 14. (..

신변잡기 2022.08.15

朞年

오늘은 파리에 도착한지 딱 일 년이 지난 날이다. 특별히 할 일은 없었지만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며 작년의 풍경과 비교해보고 싶었다. 생 제르망 데 프레 수도원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데카르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데카르트의 유해에는 사연이 한 가지 있는데 원래는 프랑스 혁명 이후 그의 유해를 팡테옹으로 이장하려고 했다가 그의 두개골이 유실된 것을 확인하고 프랑스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결국 그의 두개골이 발견되기는 했는데 데카르트의 머리뼈는 국립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버렸으니 결국 몸통과는 영영 떨어져 버리게 된 셈이다. 수도원에 들어오니 작년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분명 관광 목적으로 찾아온 사람들이 꽤 여럿 보였다. 웅성이는 소..

신변잡기 2022.08.11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과 소산적 자연(Natura naturata)의 연원에 관한 짧은 기록

피에르-프랑수아 모로의 Spinoza et Spinozisme의 국역본 『스피노자 매뉴얼』 111 쪽에 실린 역주에 따르면, "…(전략)…[이러한 용어의] 최초의 사용은 미카일루스 스코투스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아베로에스의 아랍어 주석을 라틴어로 번역하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소산적 자연/산출되는 자연'은 하늘의 별들을, '산출하는 자연/능산적 자연'은 그것을 담는 하늘을 가리킨다. 이후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여기서 '산출하는 자연'과 '산출되는 자연'은 각각 창조자 신과 모든 피조물들을 가리키거나 보전편적 자연 전체와 여기에 포괄되는 개별 피조물들을 가리키는 등 다의적으로 사용된다). 스피노자의 서가에 있었던 헤이레보르트의 책에서도 발견된다."

학업기록 2022.08.10

Jean-Marie Vaysse, « Dictionnaire Heidegger », Principe de raison(Satz von Grund) 항목 번역

하이데거의 이유율에 관한 이해를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사전 항목을 번역해보았다. 이유율의 헤게모니는, 전지구적 기술의 발휘에서 완성에 이르는, 근대(Temps modernes)의 결정적 특징이다. 이 원리는 비록 철학의 시작과 함께 알려지긴 했지만 17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라이프니츠에 의해서 모든 인식의 토대적 원리로서 정식화된다. 하이데거는 『이유율(Le principe de raison)』에서 이 원리의 기원과 운명에 관해 물음을 던진다. 모든 근대적 사유에서 그런 것처럼 라이프니츠에게도 존재자의 존재는 대상성(l'objectivité) 속에 있었으며 표상된 존재의 사실은 표상 속의 대상의 대상성에 귀속되었다. 이유율은 표상과 그 대상이 정초되어 있을 것을 요구한다. 이유율이 주어졌을 때..

논문준비 2022.08.09

탈레스 혹은 올리브와 물에 관한 단상

작은 화분에 올리브 나무 한 그루를 키운다. 이 올리브는 내가 잠시 한국에 방문했다가 다시 파리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소르본 근처의 한 카페에 앉아 책을 읽다가 식물을 길러보기로 결심했고 마침 눈에 들어온 카페 맞은편의 한 꽃가게에서 데려왔다. 원래는 산세베리아나 몬스테라 같은 관엽식물을 사려고 했는데 제일 먼저 내 이목을 끈 것이 올리브였기 때문에 올리브를 골랐다. 그렇게 올리브를 반려식물로 들이고 나서야 나는 올리브가 어떻게 생긴 나무인지 자세히 관찰할 수 있게 되었고 그때부터 무엇이 올리브 나무인지 식별할 수 있는 감식안을 갖출 수 있었다. 식물에 관한 지식이 하나 보태지자 생각보다 훨씬 많은 곳에서 올리브 나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올리브 나무는 재배환경에 따라..

세쇄지담 2022.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