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준비

Valtteri Viljanen (2008), Spinoza's Essentialist Model of Causation에 대한 짧은 기록

RenaCartesius 2022. 7. 10. 21:42

 

이 논문에서 Viljanen의 목표는 스피노자 철학에서 인과모델이  기계론적 자연학에서 채택된 작용인과라기보다는 기하학과 형상인과에 영감을 받아 한 사물의 본질로부터 그 사물의 여타 속성들이 '유출'되는 형태의 본질주의적 인과를 기초로 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의 4원인 가운데서 스피노자는 작용인은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으며, 목적인은 적어도 신과 관련해서는 거부하고 있고, 질료인의 용어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스피노자는 기존의 작용인-목적인 사이의 관계(목적을 향해 현실화되가는 변화가 작용인)가 목적인 비판과 함께 사라지고 작용인이 형상인과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스피노자 체계에서 작용인이, 형상인이, 그리고 이 둘 사이의 새로운 연관 관계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저자는 수아레즈를 중심으로 후기 스콜라 철학의 원인 개념에 관해 살펴본다. 

 

인과에 대한 수아레즈의 관점은 스피노자와 상당히 흡사하다(둘은 아퀴나스를 공동의 적으로 두고 있다). 수아레즈에 따르면 실체들은 자기의 우연적 성질(accidents)를 산출하는데 그는 이를 "자연적 유출(natural emanation)"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출은 어째서 사물의 형상과 그로부터 기인하는 성질들이 사물을 그 사물로서 만드는지를 설명해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출적 인과는 형상인과 관련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작용인과(efficiency)와도 관련하는데 유출 자체는 무엇인가를 산출한다는 점에서 작용인과이기 때문이다. 즉 사물의 형상으로부터 이런 저런 성질들이 '유출'된다는 점에서는 형상인과 관련하지만 유출의 작용(action) 자체는 작용인(efficient cause)이다. 요컨대 사물의 실체적 형상은 작용인이 작용하는 근본적 원리이다. 이러한 유출 인과 모델에서 원인과 결과는 하나의 동일한 사물 안에 내재한다. 즉, 유출적 인과는 한 사물이 그것의 외부에 있는 다름 사물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적 인과가 아니다. 이것은 한 사물의 형상내지는 본질로부터 그것이 갖는 다른 성질들이 그 사물 내에 산출되는 방식의 (형상적) 인과 모델이다. 이러한 모델은 1) 원인과 결과 사이의 무매개성, 2) 원인이 주어졌을 때 반드시 결과가 따라나오는 필연성을 특징으로 한다. 

 

저자에 따르면 중세 철학의 이러한 형상-작용인의 인과 모델은 스피노자 체계 속에 수용된다. 왜냐하면 스피노자는 말하는 인과 관계는 수아레즈가 정식화한 인과 모델과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며 이에 대한 서술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먼저, 스피노자는 사물의 본질, 형상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결과가 산출된다고 말하며, 또한 그러한 산출이 필연적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삼각형 도형의 사례가 그러한 서술의 대표이다. Carriero 등은 이러한 기하학 도형의 사례가 목적인 배제를 의도한 일종의 비유로 간주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이러한 기하학적 대상과 그것의 성질 사이에 분명한 내적 인과 관계를 설정하고 있으며 이때의 인과성은 기계론적 자연학에서의 작용인으로 간주하기 어렵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이러한 인과 관계를 지칭할 때 "~로부터 흘러/따라나온다(flow)" 같은 유출 인과의 용어를 시용하고 있다. 이러한 유사성에 근거하여 저자는 스피노자의 인과 모델이 본질로부터 그 성질들이 따라나오는 방식의 본질주의적 인과 모델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저자는 텍스트적 근거로서 1) 작용인이라는 용어의 (1부 정리 16에서의) 뒤늦은 등장, 2) "유출하다"의 (편지 75에서의) 용례, 3) 스피노자가 참조한 라이덴 대학의 철학자 (능동인과의 대립으로서 유출인을 이야기하는) Adrain Heereboord 와 Franco Büregesdijck와의 유사성을 제시한다.

 

스피노자의 이러한 본질주의적 (형상) 인과 모델에 따르면 기계론적 작용인과는 인과성의 한 유형에 불과하다. 작용 인과는 양태와 양태 사이의 외재적 인과 관계를 설명할 때 도입된다. 반면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내재적일 때 그것은 유출 인과에 가깝다. 즉, 형상 인과를 기초로 하여 스피노자는 유출과 작용이라는 두 가지의 유형의 인과 관계를 분류하고 있다. 이 점에서 스피노자의 체계는 기계론적 자연학을 설명할 수 있는 형이상학적 토대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러한 자연학의 인과성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될 수 없는 (기하학적, 형상적, 본질주의적) 인과 모델을 지니고 있다. [더 나아가 스피노자의 인과 모델을 이렇게 해석했을 때 무한 양태의 인과적 관계를 유한자들의 무한한 인과적 사슬로 고려하는 (헴펠-오펜하이머 법칙 모델과 가까운 컬리의) 기존 해석보다 더 스피노자 체계에 정합적인 해석을 제공할 수 있다.]

 


 

분량에 비해 비교적 읽기 쉬웠다. 논문이 명료하게 구성되었고 이미 몇 편의 논문을 읽어서 이제는 이 주제와 관련한 배경지식이 어느 정도 쌓인 덕택일 것이다. 다만 Carraud 와 Hübner 그리고 Viljanen도 마찬가지로 기존 철학 용법과의 유사성을 스피노자가 형상인을 받아들였다는 주요 근거로 삼는데 나는 이러한 텍스트적 상사관계가 개념적 상동관계를 보장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스피노자의 기하학적 서술 스타일의 특성상 다른 철학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참조를 언급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오히려 스피노자가 이러한 스타일을 십분 이용하여 기존의 용법을 기하하적 증명의 과정을 거치면서 전혀 다른 의미로 탈바꿈시켜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령 '불'로부터 그것이 불이기에 그로부터 '흘러나오며' 또한 불 안에 내재하는 불의 양태 또는 상태로서 '뜨거움'이 필연적으로 산출된다고 할 때 불이 뜨거움의 유출인이라고 하는 것이 수아레즈의 "유출인"이 용법이었다. 하지만 스피노자에게 '양태'의 의미는 이러한 전통적 용법과는 매우 다르다. 기존 철학자 그 누구도 양태를 실재적 존재자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적이 없다. 양태는 한 사물의 일시적 상태를 일컫는 용어였다. 이러한 용법은 스피노자에게도 있지만 동시에 스피노자는 양태를 이런 저런 성질을 가지고 있는 존재자, 그러한 성질들의 기체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스피노자에게 인간 자체가 하나의 양태이다. 그렇다면 불과 뜨거움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수아레즈의 유출인이 (연장) 속성으로부터 (크기 등) 무한 양태의 산출을, 또는 무한 양태로부터 유한 양태(인간)의 산출을 설명하는 데 적용될 수 있는가? 적어도 '양태' 개념의 변경에 따라 인과의 의미도 체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는 한 그러한 적용은 '훈제 청어(red herring)'을 좇아간 결론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보인다. 어휘는 동일하지만 그 적용대상이나 용법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면 그것의 체계 내적인 논증적 기능이 바뀐 것이고 이런 경우에는 문자적 유사성이 개념의 동일성을 보장해주지 못한다(이외에도 논문에서는, 비록 저자는 받아들이고 있지 않지만, 스피노자의 연장 속성이 모든 연장적 대상이 공유하는 성질이기 때문에 일종의 제일 질료(prima materia)와 같은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스피노자에게도 질료인이 있다는 입장이 소개되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엿가락 늘이기 해석이 된다면 비슷하지 않은 것이 뭐가 있을까. 얼마간은 다 유사하고 결국 플라톤 아니 어쩌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철학의 시작이자 끝일 것이다.  마찬가지로어떤 것의 형식과 내용이 있다는 수준으로 질료와 형상을 이해한다면 거의 모든 것이 질료형상론으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젠더 연구를 질료형상론으로 수행하지 못할 이유는 또 어디 있겠는가).


 

그 외에도 철학자들 사이의 '영향' 관계를 확정하기란 무척 어려운 작업이다. 직접적인 논쟁을 벌인 철학자라고 할지라도 그 논쟁만으로 한 철학자의 사상의 형성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무척 인간적으로는 물론 사상적으로도 막역한 사이였다고 해도 정작 표면적인 관계일 뿐 서로 지독히도 오해하고 있을 수도 있으며 서로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시대적 한계내지는 공통의 문제틀 내에서 작업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우리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당대인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요소들도 정작 당사자들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다. 가령 니체는 자기 마을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하고 있지 않은데 이런 기록의 부재가 니체가 당시 정세에 꽤나 문외한이었다는 증거로 활용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설령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 자체는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일지라고 해도 그 영향의 범위와 깊이를 측정하는 것은 체계적인 방법론에 입각하여 문헌 전체를 포괄하지 않고서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런데 스피노자가 '형상인'이라는 말은 5부 정리 31에 가서야 사용하고 그것마저 '형상인처럼(tamquam)', '형상인 혹은 적합한 원인'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 점에서 전통적 형상인의 용법과 유사한 구절이 작용인의 등장 이전에 발견된다는 것은 굉장히 국소적인 내용이고 일단 끼어 맞춘 다음에 '형상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처럼 읽히기도 하는 텍스트적 근거들을 모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피노자와 근대 자연학의 발전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으며 '영향력'으로만 빠지만 가장 결정적인 요인인데도 이러한 큰 줄기는 제쳐놓고 텍스트적 유사성으로 스피노자의 직접적인 서술 이면에 '있을지도 모르는' 스콜라 철학 전통을 스피노자 해석의 주요 받침틀로 놓고 있다는 것이 불만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