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준비

Vincent Carraud (2002), Ratio seu Causa: Spinoza, CAUSA SIVE RATIO에 대한 짧은 기록

RenaCartesius 2022. 7. 5. 04:25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 책에서 까로의 바라보는 스피노자는 중세 스콜라 철학으로의 은밀한 회귀를 감행하는 철학자, 더 정확히 말한다면, 데카르트가 획득한 성취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용함으로써 스콜라 철학의  그렇기 때문에 충분이유율의 성립을 향한 근대철학의 발전 노선에서나 더 일반적인 시각에서나 주류로부터 이탈하고 있다. 

 


 

까로가 스피노자의 원인 개념이 형상인에 근거한다고 고려하는 근거: 1) 스피노자는 사물의 원인이 그 사물의 본질과 정의(定義)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 De Anima Ⅱ, 2(413 a 13-15)를 참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의 원인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형상인을 의미한다. 2) 『윤리학』 1부 공리 4에 따르면 결과에 대한 인식은 원인에 대한 인식에 의존하는데 이처럼 원인이 시간 인식의 지평에서도 결과에 앞선다는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 Secondes Analytiques, Ⅰ, 2(71 30)와 관련된다. 그런데 이때에도 원인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형상인을 의미한다. 3) 스피노자는 인과관계를 함축관계로 이해하는데 이것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에서 형상인을 이해하는 방식과 일치한다. 4) 형상인은 『윤리학』 1부 정의 1의 자기 원인 개념에서 이미 전제되고 있으나 작용인에 대한 언급은 신이 모든 것의 원인이라는 점을 확립하는 1부 정리 16에서 등장한다. 기하하적 순서에 따라 연역적 체계를 구성하는 스피노자 철학의 특징상 작용인이 스피노자 인과성의 일차적 모델이었다면 작용인에 대한 서술이 형상인보다 더 먼저 등장해야 했다. 그러나 형상인이 더 먼저 등장했으므로 작용인은 형상인의 파생태이다. 5) 스피노자가 기하학적 도형의 사례를 들면서 본질로부터 (작용인과적으로) 필연적으로 따라나오는 도형의 특징들에 관해 이야기할 때 작용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전통적인 스콜라 철학의 용어법으로는 형상인을 의미한다. 

 


까로가 (하이데거적인) 굉장히 큰 지평에서 근대철학의 역사를 하나의 주제로 통관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논의의 뒷배경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많았다. 내가 전혀 접하지 못한 스콜라 철학의 문헌들도 많이 인용되고 있기 때문에 읽기 꽤나 까다로운 글이었다. 마리옹을 논문을 읽으면 부분적으로는 해소되지 않을까 한다. Hübner의 논의도 까로의 텍스트를 읽음으로써 조금 더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Hübner가 어째서 까로의 논의가 개념적 차원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지 알 것 같은데 까로는 스피노자의 다른 철학적 논제와 관련해서 스피노자 철학 내에서 형상인의 의미에 관해 논하기보다 문헌적 근거를 가지고 어째서 스피노자의 인과모델이 형상인 모델인지 주장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으며 'causa sive ratio' 정식의 활용 방식을 살핌으로써 충분이유율과 관련된 책 전체의 주제와 관련하는 스피노자 철학의 요소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까로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논의의 제한이 딱히 문제적이지는 않겠지만.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피노자의 관계는 특히 까다롭기 때문에 이 지점을 어떻게 파고들어야할지 잘 모르겠다. 또 까로는 상당히 거시적인 테마 아래서 스피노자를 다루고 있는데 나의 관심사는 그러한 테마와의 대결이 아니다. 하지만 까로의 논의를 충실히 파악하고 또 거기에 대해 비판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테마에 관해 알아야만 하는데 나는 이 부분에 관한 전문지식이 전혀 없다. 까로가 자신의 그림 안으로 스피노자를 데려오면서 스피노자에게 부당한 자리를 부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딱 그정도의 인상뿐 그 인상을 정당화할 수 있는 역량은 부족한 상태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테마를 내가 알아야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자구의 유사성이 실제적 영향관계를 드러내는 것은 아닌데 까로는 자신의 해석적 전제를 너무 과신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스피노자의 원인은 형상인이라고 설정해두고 그에 따라 텍스트를 독해하다보니 스피노자를 스피노자의 맥락에서 읽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거시와 미시 사이에서 언제나 동요하고 '안다'는 것이 무엇일까 싶다. 적지 않은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어 온 것 같은데 까로가 스피노자를 다루는 맥락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평가조차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식이 얕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도 알지 못한다면 과연 스피노자에 대해서 안다고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만큼 중요하고도 기초적인 지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만 건너가도 해석의 거시적 지평이 바뀌면 내가 알던 모든 것이 부정되는 느낌이다. 텍스트를 읽고 개념들 하나 하나를 습득해서 어느 정도 건축물을 조감할 수 있을 정도로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지반이 바뀌니 모든 것이 사상누각 같고 변치 않을 황금과 같은 지식인 줄 알았던 것이 알고 보니 도금된 돌덩어리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