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준비

Karolina Hübner (2015), On the Significance of Formal Causes in Spinoza’s Metaphysics에 대한 짧은 기록

RenaCartesius 2022. 6. 27. 09:04

논문의 요점을 정확히 간추린 발제문이나 엄밀한 비평이라기보다는 읽으면서 종종 들었던 개인적 단상과 읽고나서 들었던 간단한 소회를 포함한 잡문. 

 


 

Carraud의 해석이 열어준 길을 따라서 논지를 전개하고 있지만 스피노자의 인과성에 관한 Carraud의 이해와 대립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Carraud의 테제를 그가 스피노자를 다루는 맥락(근대철학에서 충분이유율의 성립의 역사)에서 탈각시켜서 다루고 있다. 이 점에서 Carraud의 해석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부분에서도 정작 Carraud는 시큰둥할 것 같다. 물론 Carraud가 스피노자를 단지 근대철학의 큰 줄기 가운데 하나, 심지어는 근대철학 전통 형성에 메이저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 마이너한 지류로서만 다루었던 반면에, 저자는 그러한 기존의 논의구도에서 벗어나, 스피노자 철학에서 형상인이라는 문제를 스피노자 연구 필드에서 나올 수 있는 다른 문제들과의 연관 속에서 다루고 있다. 그 덕분에 이 문제와 관련한 스피노자 선행연구를 대략적으로 훑어볼 수 있었고 스피노자 연구자로서 내게 큰 도움이 된 논문이었다. 다만 저자가 선행연구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주석을 달고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저자가 젊은 연구자이기에 자연스럽게 수반되는 지식을 자랑하는 태도 혹은 자기 논의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방어적 태도가 아닌가 싶었다. 이에 대한 가치평가를 한다기보다 내가 가졌던 그리고 가지고 있는 태도이기도 해서.. 친근감이 들었달까.... 

 


 

저자에 따르면, 스피노자는 데카르트가 정립한 형상인의 근대적 용법―신의 본질과 그 속성 사이의 관계 및 기하학적 도형의 본질과 그 속성 사이의 관계, 신의 본질은 실존(신의 속성[완전성 가운데 하나])을 포함하는 데 이때 신의 본질은 신의 실존이라는 성질의 형상적 원인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신의 자기 원인이다. 기하학적 사례의 경우에 삼각형의 본질로부터 이 도형에 대한 다양한 성질이 따라나오는데 그러한 관계도 '유비적으로' 형상적 인과 관계라 할 수 있다―을 수용하는 한편 그것의 적용범위를 더욱 확장하여 사물 일반의 관계에까지 적용하고 있다. 스피노자가 이런 식으로 원인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윤리학』 1부 정의1의 자기 원인에 관한 스피노자의 정식이 데카르트의 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이러한 논의의 배경은 Carraud와 Marion이 수립한 것). 이러한 형상인 개념은 스피노자에게서 본질-속성의 관계이며 이것은 한 사물의 실존을 산출하는 관계의 모형이자 논리적인 두 항 사이의 함축 관계의 원형이다. 스피노자가 사용하는 '원인'이라는 용어는 별다른 부가설명이 없다면 모두 '형상인'을 의미하고 작용인은 형상인의 한 가지 특수한 유형으로서 결과가 그것의 원인과 서로 양태적으로 구별되며 원인의 외부에 있을 때를 일컫는 용어이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스피노자의 인과성에 관한 기존의 해석노선(기계론적 해석, 논리주의적 해석, 관념론적 해석)보다 (필연주의의 형이상학적 성립 근거의 해명 등의 측면에서) 스피노자 형이상학 체계에 더 잘 부합할 뿐더러, 기존 해석들이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 예컨대, 스피노자 철학에서 인과 관계를 개념적 관계로 환원시키거나(관념론적 해석이 이렇게 하는데 이는 속성다원론에 어긋난다), 논리적 수반-추론 관계와 인과 관계 사이의 관계가 무엇인지 해명하지 못하거나(논리주의 해석), 물리적 대상 사이의 관계만 설명할 수 있는 인과모델을 넘어서 모든 대상 일반에 적용될 수 있는 일의적인 인과관계 모델을 수립해줄 수 있다(가령 기계론적 해석의 작용인과 모델은 관념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해명해줄 수 없다).


 

나는 저자가 분류한 기존 해석노선 가운데 하나에 굳이 위치시킨다면 나는 기계론적 해석 노선에 속할 것이다. 게다가 나는 저자가 특히 기계론적 해석을 부당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기계론적 해석이 지지하는 인과 모델이 사물들 사이의 상호 작용을 물체의 크기, 속도, 형태, 운동량 등 연장 속성 하에서만 적용될 수 있는 용어만으로 설명한다는 것인데 내가 보기에 이는 스피노자의 심신 평행론과 관련한 저자의 이해가 기계론적 해석론자들과 근본적으로 충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저자는 기계론적 해석노선에서 말하는 작용인으로는 관념들 사이의 관계를 해명하지 못한다고 간주하는데, 스피노자는 물론이고 이미 데카르트부터 관념과 관념 사이의 인과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수립되었고 그 관계를 두 철학자 모두 정확하게 작용인이라고 적시하기 때문에 과연 저자가 텍스트에 충실하게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 것인지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다. 그 외에도, 과연 『윤리학』의 자기 원인의 정의가 데카르트로부터 유래한 것인지, 또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스피노자가 자기 원인을 형상인으로서 고려하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가 되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든다. 물론 스피노자가 제시하고 있는 자기 원인 정식은 데카르트가 제시한 것과 축자적인 유사성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문구의 내용이 아니라 그것이 체계 내에서 어떤 논증적 역할을 하느냐이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자기 원인 개념이 데카르트의 것과 다른 논증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단지 형태의 유사성에 근거해서 스피노자가 자기 원인 정의가 데카르트의 형상인 정의와 유사하더라도 그것이 스피노자가 자기 원인을 형상인으로서 고려하고 있다는 텍스트적 근거는 되지 않을 것이다. 이외에도 반대논증을 세우기 위해 더 고민해봐야 할 지점은, 왜 작용인에 대한 첫 서술이 1부 정리 16에 가서야 등장하는지 등등 논증적 순서에 대한 설명(Carraud에 따르면 형상인으로서 간주된 원인에 대한 설명은 1부 정의1에 나오므로 가장 첫 머리에 등장한 셈), 본질-속성의 필연적 잇따름 관계를 기하학적 사례를 통해 해명하는 것의 의미, 스피노자가 내적 작용인에 관해 언급하는 편지(저자는 작용인이 전부 '외적인' 것이라고 말하므로), 작용인에 관한 각종 언급들, 기존의 전통적 개념의 의미를 다르게 씀으로서 새로운 의미를 부과하는 스피노자의 언어사용 전략 등등... 

 


Melamed의 논의는 Hübner를 반박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되는데, 가령 Melamed는 17세기에 일반적으로 작용인은 결과를 산출하는 힘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고 스피노자는 자기원인을 이야기할 때도 스스로를 산출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스피노자의 자기원인을 작용인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적어도 Hübner가 논의하는 데카르트가 정립한 17세기의 형상인 개념에 따르면 본질에서 여타의 성질이 따라나오는 것에도 본질이 무엇인가를 산출한다고 말할 수 있으므로 스피노자가 원인과 관련하여 그것이 결과를 산출한다고 서술한다고 해서 그 원인이 작용인이라는 결정적인 근거는 되지 못한다. 물론 이것은 조금 더 문헌학적 근거를 동원해서 둘 중 누구의 말이 더 신빙성 있는지 따져봐야 할 문제이겠지만..


 

스터디는 안 하더라도.. 다음 주 주말까지 발제문 수준의 완결된 글 한 편으로 논문 내용을 정리하고, 이 논문에서 언급된 논문들의 개요를 대강 훑어보고 리딩 리스트에 추가할 논문을 선별하고, Carraud의 논문을 읽기 시작하는 것이 한 주의 과제. 

 


 

여전히 논문을 제대로 요약하고 정리하면서 읽어나가는 법에 익숙하지 않다. 이런 저런 필기를 남겨두었지만 썩 만족스럽지는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