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준비

Stephen Zylstra (2022), 「Spinoza, Emantation, and Formal Causation」 정리

RenaCartesius 2022. 7. 15. 07:15

개요

 

이 논문에서 저자의 목표는 스피노자의 인과모델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형상인과의 모델이라고 주장하는 ―’형상적(formal)’이라는 말 때문에 스피노자의 역량을 순수 개념적인 것으로 오도하여 스피노자 존재론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입장을 반박하고 스피노자 인과모델의 철학적 원천을 새로이 밝혀냄으로써 스피노자의 인과모델이 작용인과 모델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형상인과 모델의 지지자들은 주로 세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1) 후기 스콜라 전통에서 유출(emnation) 개념은 실체가 그것의 실체적 형상 때문에 필연적으로 갖는 성질들이 도출되는 인과성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유형의 인과성이 스피노자에게서도 발견되는데 이러한 유출 인과는 형상 인과로 해석될 수 있다. 2) 스피노자가 활동했던 17세기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수학에서는 기하하적 증명의 도출을 형상인과로 고려하는 관점이 성행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특히 자기원인과 관련하여) 본질과 성질 사이의 필연적 산출을 논의할 때 기하하적 사례를 제시한다. 이 점에서 스피노자는 형상인과를 수용하고 있다. 3) 데카르트의 자기원인 개념은 형상인과로서 정식화되었는데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논의를 받아들이면서 자기원인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세 가지 근거를 더욱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형상인과 모델의 지지자들이 스피노자 형상인과의 철학적 배경이라고 주장하는 원천들이 오히려 스피노자의 인과모델이 작용인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라는 점을 밝혀낸다. 저자에 따르면, 후기 스콜라 철학에서―특히 스피노자가 직접적으로 참조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프로테스탄트 철학자 Heereboord와 Bürgersdijk―의 유출인의 개념은 작용인과로서 정식화되었으며(1장), 스피노자가 수학 영역에서 주로 참조하고 있는 자는 형상인과의 지지자들이 생각하는 Issac Barrow―이 사람의 저작이 스피노자 사후에 출간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스피노자는 아예 Barrow를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으며 설령 알았다고 하더라도 Barrow의 모델은 스피노자 체계와 양립할 수 없다―가 아니라 홉스인데 홉스는 기하학 영역에서 작용인 모델을 수립했고(2장),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자기원인 개념을 수용하면서 그것을 형상인과에서 작용인과 모델로 바꾸고 있다(3장). 더 나아가, 저자에 따르면 스피노자에게서 『윤리학』 5부 정리 31에서 단 한 번 등장하는 “형상적 원인(causa formalis)"이라는 용어조차 아리스토텔레스적 형상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표상적 본질과 개념쌍을 이루는 형상적 본질에서 사용되는 ‘형상'의 의미로써 ‘형상적 원인’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형상인과의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역사적 배경이 스피노자 사상에 실제로 영향을 준 것은 아닐지라도 스피노자의 인과모델을 형상인과로 고려하는 것이 스피노자 체계상 그 자체로 모순되는 해석은 아니라는 점을 저자는 인정한다. 하지만 애초에 형상인과 해석은 역사적 테제로서 주장되었기에 스피노자 인과모델의 철학사적 원천이 아리스토텔레스적 형상인이 아니라는 지적으로 이 입장은 반박된다. 더욱이 작용인과 모델 역시 스피노자의 체계와 부합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형상인과 모델이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모델은 ―형상인과 모델이 기계론적 입장에서 협소하게 해석된 인과성이 드러내주지 못한 스피노자 인과성의 특징을 드러내준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이 모델은 형상인과 작용인의 범주를 당대에 허용되지 않는 방식으로 뒤섞고 있기에 채택하기가 어렵다―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해석적 입장이다.

 

1. Emantative Causation in Late Scholaticism

 

스피노자는 분명히 “~로부터 따라나온다" 같이 유출론적 언어를 사용하면서 실체의 본질로부터 그것의 성질들이 필연적으로 따라나온다고 서술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까로와 같은 형상인과 모델의 지지자들은 실체의 본질, 실체적 형상, 형상에 근거하여 그로부터 성질들이 유출되는 것이므로 ―유출됨으로써 우연적 성질 또는 양태들이 산출되는 것 자체는 작용인과일지라도 그러한 산출이 한 사물을 그 사물에게끔하는 형상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형상인이 스피노자 인과모델의 일차적인 모델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유출인이 형상인과 짝지어질 수 없으며 오히려 스피노자와 관련하는 후기 스콜라 철학자들의 텍스트를 분석해보면 그들은 모두 유출인을 작용인과 관계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프로테스탄트 철학자들은 설령 유출인이 실체적 형상과 관련되기는 하지만 혹은 작용 인과의 몇 가지 특성을 결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작용인'으로 이를 규정한다.)

 

저자가 보기에 형상인과의 지지자들은 아마도 유출인이 형상(forms)을 통해 실행되는 인과성의 유형이기 때문에 이를 형상인과라고 (잘못) 간주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후기 스콜라 철학에서 형상인은 더욱 제한된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단지 ‘형상'과 관련한다고 해서 형상인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후기 스콜라 전통에서 유출인은 “실체적 형상이 실체의 성질들과 관련하여 실행하는 인과성의 유형”을 형상인과 구별짓기 위해 사용된 인과개념이며 형상인보다는 오히려 작용인에 가깝다(이것은 Zabarella 에게서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왜냐하면 이들의 용어법에서 실체적 형상은 우연적 성질들의 ―우연적 성질은 실체의 본질과 그에 내속하는 것과 구별(distinct)되는 실재적인 것으로서 양자 사이의 관계가 외재적이기 때문에― 내적 원인이 될 수 없으며 외부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형상인은 반드시 내적 원인이어야 하기 때문에 우연적 성질들의 외부 원인인 실체적 형상은 그 성질들의 형상인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외부 원인이라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에서 언제나 외적 원인으로서 고려되어 온) 작용인에 더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스피노자가 유출론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그가 작용인을 형상인으로 통합시키는 형상인과 모델을 주장했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오히려 그렇게 되면 스피노자는 모든 원인이 그것의 결과의 본질을 구성한다는 테제를 지지하고 신의 내재적 인과는 형상인이 내재적이라는 의미에서 내재적이어야 하는데 스피노자는 신이 신으로부터 따라나오는 모든 것의 본질과는 구별된다고 보기 때문에 이는 잘못되었다. 신이 개별자들의 본질과 실존을 산출하기는 하지만 각각의 사물들의 본질에 신이 포함되지는 않는다. 즉, 스피노자에게 신은 모든 것들의 형상인이 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스피노자는 신이 그러한 것들의 작용인이라고 명시적으로 말한다. (또한 이렇게 정의된 내부/외부의 정의에 따르면 신이 한편으로는 형상인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작용인이 될 수는 없다)

 

2. Spinoza and Mathemathics

 

스피노자는 신적 인과(divine causation)를 이야기할 때 기하학적 수반관계와 비교하곤 한다. ex) “by the same necessity and in the same way as from the nature of a triangle it follows, from eternity and to eternity, that its three angles are equal to two right angles” (E IP17S/G II.62).

 

Paolo Mancosu (1996)의 작업에 따르면 17세기 수학자들 사이에서는 (분석론 후서에서 제안된대로) 수학적 대상들이 목적인이나 작용인이 아니라 형상인과 질료인을 통해 탐구되어야 한다고 간주되었다. 그리고 스피노자 당대의 수학자들은 도형의 본질로부터 그것의 성질들이 필연적으로 따라나오는 것을 일종의 형상인과로 보았고 스피노자 역시 이와 매우 흡사한 주장을 펼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스피노자는 이러한 기하하적 사례를 형상인과로 고려하지 않았다. 형상인과 모델의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스피노자는 기하학적 사례를 형상인과로 고려한 Issac Barrow와 그다지 관련이 없다. 이는 문헌학적 연대기의 불일치도 있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Barrow는 스피노자의 체계와 양립할 수 없다: 1) Barrow는 기하하적 도형의 어느 성질이든지 그 도형의 정의로서 사용될 수 있으며 특정한 증명 하에서 형상인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스피노자는 사물의 정의를 구성하는 본질과 여타의 성질 사이의 엄격한 구별을 주장한다. 2) Barrow는 “every Action of an efficient Cause, as well as its consequent Effect, depends upon the Free-Willand Power of Almighty God, who can hinder the Influx and Efficacy of any Cause at his Please”라고 주장하며 작용인과 그것의 결과 사이에 필연적 관계가 없지만 수학에서는 필연적 관계가 있기 때문에 수학은 작용인과가 아니라 형상인과 모델에 근거한다고 주장하지만, 스피노자는 신의 역량에 대한 이러한 전제 자체를 거부하며 작용인 역시 필연성을 함축하고 있다.

 

저자는 기하학적 수반관계에 대한 스피노자의 입장은 홉스와 가장 가깝다고 주장하는데 홉스는 수학은 작용인의 dynamical science로서 재구성한 바 있다. 기하하적 도형의 정의들은 (작용인에 의해) 발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홉스에게 도형의 모든 성질들은 그것의 발생적 정의로부터 연역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연역은 작용인과에 따라 이뤄진다. 이러한 관점은 스피노자와 매우 유사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스피노자는 정의가 반드시 발생적이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지성교정론』, 60번째 서신). 저자가 보기에 이러한 홉스의 영향은 스피노자가 (홉스는 유물론에 입각해서 수행했던) 수학적 대상들 역시 실재적인 것으로서 간주하는 작업을 더욱 풍부한 존재론적 지평에서 다룰 수 있도록 하는 영감을 주었다.

3. Descartes and the Causa sui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이 데카르트의 자기원인 개념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데카르트는 「네 번째 반박에 대한 답변」에서 자기원인을, 아리스토텔레스적 용법에 관한 참조를 명시적으로 밝히면서, ‘작용인과 유비적 관계에 있는' 형상인으로 규정한다. 까로와 Hübner는 스피노자에게서 자기원인이 모든 인과적 관계의 범형이라고 주장하고, 데카르트가 자기원인을 형상인으로 분류했기 때문에, 스피노자에게서도 형상인과가 가장 일차적인 인과 모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데카르트의 영향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스피노자의 인과성이 형상적이라고 분류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데카르트는 작용인은 다른 것에 실존을 부여하는 인과성이라는 아비첸나적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신이 자기원인일 때 그것은 신의 본질이 자기 자신에게 실존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엄격한 의미에서 작용인은 아닐지라도― 유비적으로 작용인이지만 여기서 원인과 결과과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그 점에서는 형상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데카르트에게 신이 다른 모든 것의 형상인인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은 신으로부터 실존을 부여받으며 원인에 존재론적으로 후행한다는 점에서 신과 구별되기 때문이다. 형상인과 모델의 지지자들은 스피노자에게서도 이런 식의 형상인/작용인의 분기가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자기원인으로서 신은 형상인이고 다른 모든 것의 원인으로서 신은 작용인이다. 왜냐하면 1부 정리1에서 신은 본성상 양태에 앞선다고 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해석의 지자자들은 신과 양태들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가 스피노자 체계에도 있다는 것을 근거로, 비록 스피노자가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데카르트와의 개념적 구도의 유사성에 의존하여, 스피노자의 자기원인이 형상인이며 스피노자에게서 다른 모든 인과성은 모두 이 형상적 자기원인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보기에 스피노자의 자기원인을 데카르트와의 유사성을 근거로 형상인이라고 해석하고 이를 다시 다른 모든 인과성의 원천이라고 주장하는 해석은 우선 스피노자 존재론에서 자기원인이 신에게 한정되지 않고 다른 모든 것에도 마찬가지라는 암묵적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 즉, 코나투스 학설에 따른 양태들의 자기보존 노력을 양태적 수준의 자기원인적 인과로 고려하는 것이다. 이 전제가 참이라면 ―스피노자의 자기원인이 정말 형상인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스피노자에게 자기원인이 일차적인 인과모델이라는 주장이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이러한 전제는 성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자기원인은 본질이 실존을 함축하는 것인데 양태의 자기보존 노력은 주어진 실존을 무한정하게 지속하려는 욕망이지 스스로에게 실존을 부여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 양태의 실존은 다른 것에 의해 주어진다. 따라서 자기원인이 스피노자에게 일차적 인과모델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어쩌면 형상인과 모델 지지자들은 1부 정리 25의 주석의 “신은 자기 자신의 원인이라고 불리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모든 것의 원인이라고 불린다”를 자기원인이 일차적 모델이라는 근거로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주장 역시 성립될 수 없다고 지적하는데 왜냐하면 스피노자는 이미 “다른 것으로부터” 실존하는 경우의 인과성과 “자기 자신으로부터" 실존하는 경우의 인과성을 구별하고 있기 때문에 실체와 양태 사이에는 비대칭성이 존재하고 1부 정리 25의 주석에서 같은 의미란 적어도 형상인과 지지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신이 자기 자신의 원인인 것과 같은 의미에서 다른 것의 원인이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스피노자의 자기 원인이 형상인으로 특징지어질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보기에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은 데카르트보다는 홉스적인 역동적 기하학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그 근거로 60번째 서신에서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적인 (작용인이 아닌 것으로서) 신 정의를 거부하고 있다. 스피노자의 자기원인으로서 신은 신의 본질로부터 신의 실존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홉스적인) 발생적 정의의 방식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스피노자의 자기원인은 작용인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4. The Causa formalis in Spinoza’s Vocabulary

 

스피노자는 형상인(causa formalis)이라는 말을 『윤리학』 5부 정리 31에서 단 한 차례 사용하면서 이를 적합한 원인과 동일시한다. 저자는 형상인과 모델의 지지자들이 이 구절에서 ‘형상인'이라는 용어의 사용이 스피노자가 아리스토텔레스적 형상인을 수용하고 있다는 근거로 사용하지만 스피노자의 용어법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이때 ‘형상적’의 의미는 전혀 아리스토텔레스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보기에 이때의 ‘형상적'은 오히려 데카르트가 「제3성찰」에서 첫 번째 우주론적 증명에서의 용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데카르트적 맥락에서 ‘형상적’이라는 용어는 ‘표상적(objective)’이라는 말과 대립되며 이것은 ‘현행적(actual)’ 혹은 ‘실재적(real)’이라는 표현과 등가를 이룬다. 실제로 스피노자는 5부 정리 31 외에도 『윤리학』 곳곳―가령 2부 정리7의 따름정리―에서 이러한 의미로 ‘형상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저자는 5부 정리 31에서도 이와 같은 의미로 쓰여졌을 것이라는 근거로 형상적 원인이 적합한 원인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 1부 공리 8에서 “어느 사물에 있는 것이든 [그 사물의] 실재성 또는 완전성은 그것의 제1의 그리고 적합한(adequate) 원인에 형상적으로(formally) 혹은 탁월하게(eminently) 실존한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스피노자적 의미에서 적합한 원인은 그것의 결과를 명석판명하게 지각될 수 있게 해주는 원인을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적합성'은 존재론적이라기보다 인식론적 개념에 해당하며 이는 작용 인과성과 관련한 (결과의 원인으로의) 포함 원리와 관련한다. 따라서 5부 정리 31에서 ‘적합한 원인’과 등가를 이루고 있는 ‘형상적 원인'이라는 표현은 결과를 산출하는 데 필요한 실재성을 (표상적으로가 아니라) 형상적으로 (자신 안에) 포함하고 있는 작용인의 일종을 일컫으며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에서의 형상인과는 무관하다.

 

5. Conclusion

 

이하 생략

(*근대철학적인 작용인의 의미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큰 영향을 미친 아비첸나, 오캄 등에 대한 짤막한 언급과 스피노자에게서 (형상인/작용인과 같은 방식의 분기는 없지만) 단 하나의 인과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근거로 3부 정리 15에서 per accidens 로서 산출되는 정서들의 인과성은 ―크게 보아 작용인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1부 정리 16에서의 per se 로서 산출되는 인과성과 다르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