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준비

중간점검

RenaCartesius 2022. 7. 16. 01:08

리딩 계획은 책을 구하지 못하거나 새로운 논문이 리스트에 추가되거나 해서 약간 어긋났지만 대체로 순조롭다. 

 

원래 읽으려고 했던 Laerke의 논문은 인과성에 관련한 논문이라기보다는 비실존자 문제와 관련해서 스피노자 철학에서 actual essence와 formal essence 를 어떻게 고려할 것인지와 관련한 논문이었다. formal 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고 Carraud, Viljanen이 인용되었다는 점에서 내가 착각한 것이다. 실제로 논문 내에서 Carraud를 인용하는 것도 (비실존자의 비실존 이유를 묻는) 충분이유율과 관련한 맥락이었다. 물론 Laerke가 여기서 대결하는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플라톤적(platonicing) 독해이고 이것은  Viljanen이 스피노자의 자기원인을 형상인으로 해석함으로써 스피노자의 본질을 일종의 형상이나 이데아 같은 것으로 독해하려는 경향과 관련하기 때문에 형상인에 대한 논의와 아주 무관한 것은 아니다. 다만 스피노자의 자기원인을 작용인으로 해석하려는 주장을 전개하기 위한 보루로 사용될 수 없어서 일단 리딩 리스트에서 빼려고 한다. 그와 별개로 어렵게 구하긴 했지만 마리옹의 텍스트들도 데카르트의 자기원인만 분석하고 스피노자는 곁다리로만 다루고 있어서 일단 후순위로 두거나 이것 역시 아예 리스트에서 빼버릴까 생각 중이다. 

 

한편 Zylstra의 논의가 형상인과 모델 지지자들을 잘 반박하는 동시에 작용인과 모델을 잘 옹호하고 있어서 이 주제로 (적어도 투고용으로는) 논문을 쓰기엔 무리일 것 같다. 물론 (게루의 해석에 근거하여) 홉스의 발생적 기하학 정의가 스피노자 철학의 주요한 역사적 원천 가운데 하나이고 이에 입각해서 스피노자의 자기원인을 작용인으로 해석하는 방식에 약간의 불만과 마뜩찮은 구석이 있긴 하지만.. (Audié 같은 경우는 스피노자가 기하학과 관련해서 홉스의 제자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기도 하니까). 아무튼 작용인과 모델을 지지하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기보다 Zylstra를 따라가면서 조금 더 넓은 맥락에서 이 문제를 포괄하여 다룰 수 있는 주제와 방안을 모색할 필요를 느낀다. 내가 불충분하다고 느낀 지점은 새로운 주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보충하면 될 것이다. 박사논문의 일부로 들어갈 수 있는 글을 mémoire로 쓰고 그걸 다시 쪼개서 어딘가에 투고해보겠다는 계획에 맞게 이 주제를 더 큰 화폭의 일부로 옮겨두면서 나의 주제로 변용시켜보자. 현재로서는 작용인이냐 형상인이냐의 논쟁보다는 스피노자에게서 실체와 양태의 관계 속에서 인과, 역량, 개체성의 문제를 다뤄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우선 Viljanen의 책 일부를 조금 읽으면서 생각을 가다듬어 보겠다. 

 

어느 정도의 독서를 통해 주제에 관해서 나름 논증적 언어로 풀어낼 있을 정도의 배경지식을 갖게 됐다.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연구의 지류들이 있었고 스피노자와 17세기 이전 철학을 바라보는 시야가 많이 트였다. 확장된 시야 탓에 아직도 어안이 조금 벙벙하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내가 예전처럼 공부하고 연구를 다시 있을 정도가 같다. 지난 겨울, 정도의 작업량을 견딜 있었다면 나은 연구계획서를 들고 교수들과 컨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학위의 과정에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이전 작업물에 불만을 느끼긴 하겠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헐거운 글을 써냈다. 당시에 공부에 집중하기 어렵기도 했지만 솔직히 입시를 만만하게 봤던 것도 사실이. 우는 소리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