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20240428_計

RenaCartesius 2024. 4. 29. 22:29

지나간 시간은 아무리 얼룩졌을지라도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필요하고 또 필연적이었던 것이니 더는 괘념치 말자, 그런 다짐 비슷한 것을 여러 차례하고 그 진리성을 인정하면서도 과거로부터 완전히 풀려나기란 쉬이 할 수 있는 아니다. 오비디우스의 시구 video meliora proboque, deteriora sequor 가 말해주는 것처럼 나 역시 후회라는 쓸모 없는 감정으로 공연한 시간을 허투로 쓰고 잃어버리는 일이 잦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보았고 조금 더 세련되고 발전한 영상미와 (이전 작과 비교해서도 그리고 작품 내적인 진행 과정에 있어서도) 다소 튀어 보였던 결말부가 인상 깊었다. 아마 같이 영화를 본 H의 코멘트가 아니었다면 꽤 오랜 기간 의미화하지 못 해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씩 조금씩 아주 더디게 몽테뉴의 『에세』를 더듬어 가고 있는 동시에 얼마 전에 막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 독서를 마쳤다. 『미국의 목가』를 읽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어지러운 독서였다. 소설의 화자 네이선 주커먼과 아이리스의 대화는 특히 최악이었는데 그나마 치밀한 묘사 속에서 보존되고 있던 문제의 사태가 가질 수 있는 복잡성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의 다양성을 작가의 메세지에 종속시켜버림으로써 아주 밋밋하게 만들었다. 결국 작중 인물들의 복잡한 정체성은 작가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리고 가장 효과적으로 또한 가장 안전하게 사태에 대한 작가 자신의 주장으로 독자를 유도시킬 수 있도록 취사선택하여 오려 붙인 것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 아저씨, 역시 전립선 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울화통을 조금 덜 겪지 않았을까.. 

 

그 외에는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여 면을 잘 삶이 못하여 약간 덜 익었지만 조갯살과 소스는 나쁘지 않았던 봉골레 파스타를 대접하고, 다만 내가 그 날 과음한 탓에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의 양의 구토를 했다는 것 정도이다. 말이 나온 김에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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