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기록

P.-F. Moreau (1977), Jus et Lex : Spinoza devant la tradition juridique, d’après le dépouillement informatique du Traité Politique 정리

RenaCartesius 2023. 12. 21. 04:24

우연한 기회에 발견했다. 이 논문에서 제안한 번역어는 최종적으로는 채택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일단 모로 본인부터 자신이 번역에 참여한 『신학정치론』에서는 régle de droit 같은 표현으로 jus를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도입

이 논문은 리에주 대학교의 LASLA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된 고전 문헌에 대한 정량적 문헌학 작업의 도움을 받아 스피노자의 『정치론』 내에서 사용되는 주요 사법적-정치적(juridico-politique) 개념어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다. 스피노자는 비록 새로운 용어를 많이 만들어낸 철학자는 아니며 오히려 그것을 꺼렸으나 기존의 전통적 용어들의 의미를 전유함으로써 용어들 사이의 새로운 개념적 배치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저작을 집필한 철학자였다. 따라서 만약 스피노자가 단어의 의미를 바꾸거나 기존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이유 없이 그런 것이 아니며 용어들의 의미론적 변화는 스피노자의 이론적 입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컨대 스피노자가 사용하는 실체(substance), 속성(attribut), 양태(mode) 등의 용어는 그가 데카르트 전통의 유산에 기초하고 있으며 또한 이 용어들이 스피노자 체계 안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어떤 점에서 또한 얼마만큼 데카르트 전통으로부터 이탈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는 스피노자가 사용하는 단어들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개된 Gustav-Theodor Richter의 작업은, 존재론과 형이상학과 관련하여, 스피노자가 (라틴)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 수아레즈 그리고 데카르트로부터 형성된 어휘 체계를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러나 법과 국가와 관련한 어휘들과 관련해서는 아직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작업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부재를 보완하기 위한 첫 단계로서, 저자는 이 논문에서 LASLA 프로그램―비록 17세기에 쓰인 ‘신 라틴어(néo-latin)’보다는 세네카 등 고대 저자들의 텍스트 분석이 중심이지만 ―의 도움을 받아 우선 『정치론』 내에서 사용되는 어휘들에 대한 인덱스 작업을 수행한다. 저자는 이러한 작업이 스피노자가 사용하는 용어를 통해 그가 어떤 사상적 전통을 선택했는지 밝혀낼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문헌학적 작업을 넘어 사상사 연구에 속한다고 말한다.

자료 분석

1. potestas와 potentia에 관련하여

스피노자는 정치학의 고전적 용어인 potestas를 사용하여 현상을 설명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는 실재들의 자연적 역량을 고려하여 설명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며 따라서 potentia라는 용어를 더 중시하며 실제로 국가의 역량의 절대적 성격을 규정할 때, 이와 관련하여 정치적 아우구스티누스주의에서 확립된 관례적 용법인 plenitudo potestas 대신에  plenitudo potentiae라는 표현을 사용한다(TP 4/5). 그러나 통계에 따르면 『정치론』에서 potestas는 총 72번 potentia는 65번 사용된다. 하지만 이때 potestas 들어가는 관용어구나 다른 텍스트의 인용 같은 것을 섬세하게 제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그로티우스가 제시한 ‘최고 권력(summa potestas)’ 같은 개념을 사용하는 경우는 potestas 개념의 사용과 무관한 것으로 봐야 하므로 potestas의 빈도수를 셈할 때 제외해야 한다. 이렇게 summa potestas가 사용되는 23번의 사례를 뺀다면 스피노자는 『정치론』에서 potentia를 65번 사용하는 반면에 개념으로서 potestas는 49번 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2. 빈도수 비교

국가와 정부, 그리고 법률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스피노자의 『정치론』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 1) 국가의 토대들에 관한 이론적 분석(1~5장)과 2) 정부의 형태에 관한 유형론(6~11장). 따라서 우리는 『정치론』에서 다음과 같은 주요한 정치적 용어들이 상당히 중요하게 그리고 또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imperium371civis83

jus 335 pax 70
civitas 136 status 63
lex 84 libertas 55

jus는 imperium을 제외하면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그러나 만약 정부 형태를 다루는 부분을 제외한다면 jus는 개념어로서 사용되는 엄격한 기준―탈격 형태인 jure로 쓰인 21번의 경우는 제외―을 적용하더라도 당연히 imperium을 제치고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용어이다.

이러한 빈도수는 스피노자가 정치철학 내에서 jus를 중시하는 전통에 서있는지 혹은 lex를 중시하는 전통에 서있는지를 알려줄 수 있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가장 많이 쓰인다고 해서 스피노자의 정치철학의 가장 주요하고 중요한 대상이 jus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기에 지금 이 단계에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3. jus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

사실 jus는 이미 여러 방식으로 규정된 채 전승되어 온 개념이다. 그러한 jus가 포함되는 기존의 개념어들의 용례를 정리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jus naturae 20 jus belli 10
jus naturale 7 jus civile 12

 

 

 

 

 

우선 jus naturae와 jus naturale 사이의 수치적 격차와 jus naturae는 jus belli 혹은 jus civile와 대립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하자. 그리고 이를 각 장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chapitres 1 2 3 4 5 6 7 8 9 10 11
jus naturae   15 5                
jus naturale   4 1 1     1        
jus belli     1 2 3 1 2   1    
jus civile   1 1 8     2      

 

 

jus naturae는 jus naturales와 비교했을 때 훨씬 자주 쓰이며 2장과 3장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반면에 jus naturale의 용례는 훨씬 분산되어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두 개념 사이의 차이를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자연의 역량과 관계하지만 전자는 자연의 역량 자체를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 그에 관해 추론할 때 사용되는 반면에 후자는 국가 혹은 상이한 체제들의 기능을 설명할 때 분석 도구로서 참조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이러한 용례는 어째서 jus naturae가 『정치론』의 조금 더 기술적인(discriptifs) 측면을 다루는 초반부에 (2장에서 de jure naturali et civili eimus의 경우처럼 jus civile와 함께 사용되며) 몰려있는지를 보여준다.

법/권리(Droit)와 법률(Loi)

이제 스피노자가 jus를 335 차례 사용하는 반면 lex는 84 차례만 사용한다는 사실로 돌아와 그가 법철학 혹은 정치철학에서 어느 전통에 속하는지 조금 더 상세히 검토해보도록 하자.

그런데 사실 이 두 용어와 관련해서는 무엇보다 번역 문제를 다루는 것이 선결 과제로 주어진다. 왜냐하면 jus는 때로 권리로도 번역되지만 때로는 법(loi)로 번역될 때가 있고 lex는 항상 법률(loi)로 번역되기는 하지만 종종 decretum, institutum을 법률(loi)으로 옮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엔 jus를 법으로 옮기는 jus에 대한 법률주의적(légaliste) 해석은 스피노자가 사용하고 있는 사법적 어휘의 다양성을 획일화함으로써 스피노자의 사유에 대한 이해를 방해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용어 선택이 자동적으로 번역자의 오류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 번역자가 해석한 스피노자가 lex를 중시하는 전통에 있다면 jus에 대한 법률주의적 해석에 입각한 번역은 정당화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관건은 과연 스피노자에게서 jus라는 용어를 어떻게 이해하고 또한 그것을 어떻게 현대어로 옮길지 결정하는 것이다.

지금의 문제와 관련하여 미셸 빌리(Michel Villey)의 작업은 매우 유용하다. 그는 단순히 jus 개념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 개념이 사용되는 역사적 전통에 따라 달라지는 용어의 의미론적 다양성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jus와 lex 사이의 관계와 관련한 미셸 빌리의 작업을 거칠게 요약한다면 우리는 스피노자가 발을 디딘 법과 관련한 사상에는 크게 세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 아우구스티누스적 해석

jus는 lex이다. 그러나 이때 jus는 사물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덕적 올바름과 신의 명령에 대한 복종과 같은 것으로 생각된 정의 개념과 뒤섞여 있다. 요컨대 jus의 실현은 lex에 따라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신법이 있고 인간법이 있으며 그것에 충실할 때 jus가 있는 것이지 jus가 독립적 실재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2) 아퀴나스적 해석

아퀴나스적 해석은 로마법(droit romain)의 유산을 받아들였다. jus는 관계(rapport)이며 정의(juste)는 사물 자체 내에 있다. 각자에게 각자의 것을, 분배의 과제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의 평등에 기초한다. 여기서 lex는 부차적인 것으로 밖에는 개입하지 못하며 이 분배의 양상을 규정하기 위한 여러 수단들 가운데 하나이다. (아퀴나스는 droit divin이라는 표현이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만약 이러한 전통에서 쓰이는 jus라면 그것을 ‘법률(loi)’이라고 옮기는 것은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하다.

3) 명목론적 해석(수아레즈)

수아레즈의 De Legibus에서 발전된 명목론적 해석에 따르면, jus 라는 단어는 두 가지 용법으로 쓰일 수 있다 : 1) jus praeceptivum으로서, 이때 jus는 법률(loi)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때는 아우구스티누스 전통과 달리 신법보다는 인정법 혹은 실정법들의 체계와 관련하여 사용된다. ; 2) jus dominativum으로서, 이때 jus는 개인의 ‘정신적 능력(faculté morale)’을 가리키는데 이는 곧 주권적 의미의 droit, 권리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 능력을 정초하는 것은 바로 오직 인간들에게만 주어져있는 인간의 인간성(humanité)이다.

이 해석 전통들은 서로 대립적이다. 가령 아퀴나스는 jus divinum 개념을 거부했으며 반대로 수아레즈는 그다지 명시적인 방식으로 드러낸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아퀴나스의 거부를 거부했다. 또한 명목론적 전통에서 jus는 계명(préceptes)로 해석될 수 있으나 아퀴나스 전통에서 jus는 계명으로 축소될 수 없다.

저자가 보기에 스피노자의 텍스트에는 이 세 가지 해석전통이 맥락에 따라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저자는 『정치론』에서의 jus 용례를 크게 다섯 가지 형태로 분류한다.

a) jus = potentia 인 경우.

스피노자에게서 jus는 그 정의상 역량이다. 곧 스피노자에게 자연권(jus naturae)는 자연적 역량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jus가 사용될 때 그것은 계명으로서 법률(loi)의 의미는 전혀 지니고 있지 않다. 단지 인간을 포함하여 자연적 역량을 지닌 모든 사물들에 적용될 수 있는 자연법칙들(leges naturae)이 있을 뿐이다. (단수형인 lex natruralis는 단 한 번밖에 사용되지 않음)

b) jus가 특정한 한 개인의 권리를 말하는 경우

habere jus ad… ; jus condendi leges ; jus civis ; jus civitatis의 용례들. jus civile와는 다른 의미에서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시민권(droit de civile). 이러한 경우로 jus가 사용되는 맥락은 공동체 내에서 권력과 업무들의 분배 문제를 다룬다. 이것 역시 당연히 자연적 역량의 연장선상에 있는 jus를 말하지만 이 경우 사회적 집단의 차원에서 유지되고 행사되는 jus를 다루는 것이다. 공동체를 통해 실행되는 분배의 문제와 관련한 jus 개념은 틀림없이 아퀴나스 전통과 로마법 전통과 관련하다. TTP 5장도 참조할 것.

c) jus가 복수형으로 사용된 경우

jura communia ; jura constituta. 이 경우 jus는 제도들(instituta)과 같은 것을 지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때 jus는 고전적으로 확립된 법률들(lois)로서 제도(institutum) 이상의 것을 말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의미의 제도와 대립되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니지만 고전적 용법의 의미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며 그보다 훨씬 폭넓은 풍습과 관습등 인간 신체에 새겨진 습성 같은 요소들을 포괄하고 하고 있다.

d) jus belli, naturale, civile 로 사용된 경우

특정한 droits 들을 지시하기보다는 어떤 상태들(états)을 가리킨다. esse sui juris / esse alterius juris 의 용례도 마찬가지.

e) jura revelata, jura inscripta로 사용된 경우

이때는 아우구스티누스 전통을 고려하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때는 ‘법률(loi)과 상당히 가까운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대체로 이렇게 쓰이는 경우는 1) 상당히 논의의 배경이 제한되어 있으며 또한 부정적인 방식으로 쓰이는데 예컨대 예언자들에 관해 말할 때 사용되며 또한 2) ‘법률’의 의미로서 jus가 쓰이는 경우 이때의 법은 오직 신법(loi divine)과 관련하지 인정법과 관련해서 jus가 쓰이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정치론』에서 (『신학정치론』 4장의 주제였던) lex divina라는 표현이 사라졌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다섯 가지 용법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스피노자가, jus가 lex와 동일시되는 예외적으로 쓰이는 5번째 경우만 제외한다면, 아우구스티누스 해석 전통을 체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즉, 스피노자는 jus를 lex에 종속되는 것으로서 생각하지 않는다. droit divin 과 loi divine 과 같은 표현이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러한 결론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스피노자의 두 번째 용례가 수아레즈 전통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스피노자는 jus를 사회적 집단의 차원에서 사유함으로써 개인의 권리에 관해 말할 때도 그것의 비-주관적 혹은 비-주체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권리는 그 개인의 인간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 역량에 그 근원을 들고 있다.

번역과 관련해서, 저자는 각각의 용례마다 다음과 같은 프랑스어 번역어를 제안하고 있다. 1~4번째 용례는 결코 loi로 옮겨질 수 없다. 1, 2, 4의 경우는 « droit »라고 옮겨야 하며 3의 경우는 « droits » 혹은 « usages »로 옮겨야 한다. 5번 용례와 관련해서는 « lois » 혹은 « commandement »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droits 라고 옮겨도 안 될 이유는 없다.

 


 

노션에서는 이탤릭도 넣고 표도 깔끔하게 만들었는데 더 손보기 귀찮아서 이대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