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기록

Jean-François Kervégan (2017), « Foucault, le droit, la norme » 정리

RenaCartesius 2023. 11. 26. 07:50

             2007-2008, 케르베강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 “푸코의 사유에서 규범성의 문제는 회피되거나 혹은 우회적으로 다뤄지거나 아니면 정상성(normalité)과 정상화(normalisation)의 문제로 환원된다. 푸코는 언제나 정상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규범을 이해하며, 법학자들이 이해하는 방식(, 법철학) 규범성 혹은 도덕철학 내의 의미에서의 규범성 개념에 신뢰를 주는 것을 거부한다”.

             케르베강은 자신의 생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만 푸코의 마지막 강의들에는, 미완결된 프로젝트로 남았지만, “자기 수행(conduites de soi)”들을 구조화하기 위한 새로운 유형의 규범성의 윤곽을 그리려는 기획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며 이러한 규범적 (혹은 푸코가 윤리적 규칙들을 지시하는 일을 무척 꺼리기 때문에 메타-규범적) 입장으로의 푸코의 진화로부터 우리는, 주권의 구법과 계약주의적 체계에 대한 고려에 국한되지 않는, 법에 대한 푸코주의적 접근이 무엇인지 해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케르베강과는 다르게, 1) 푸코가 법의 부정적으로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도 고려하고 있다는 주장의 연구로는Mathieu Potte-Bonneville « Foucault et le droit », 2) 푸코는 법을 각하(却下, disqualifier)한 것이 아니라 법에 관해 다르게 생각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연구로는 Marcio Alves da Fonseca Michel Foucault et le droit를 참조하라)

             푸코는 1970년대의 텍스트La société punitive ; Il faut défendre la société ; Sécurité, térritoire, population ; Naissance de la biopolitique에서 나타나는 (droit)’에 관한 서술에서 특징적인 측면은 이 단어가 바로 (, vieux)’라는 형용사와 곧잘 함께 사용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용례는 푸코가 보기에 우리의 시대는 더 이상 법의 시대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푸코의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에는 규율 권력의 모델이 정치권력에 대한 사법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계약론 모델을 대체하였다. 따라서 권리의 양도를 통해 정치 권력의 모체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계약을 제시하는 계약론(contratualisme)은 구 시대의 체계(système vieux)이다. 푸코가 보기에 법이론(théorie du droit)”은 이러한 개인과 사회 밖에는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서 이해된 계약론으로 환원된다. 이처럼 계약/주권의 도식에서 파악된 은 절대주의의 맥락에서만 유효했으며 인구에 대한 규율과 생명정치의 시대에는 더 이상 적절하지도 않고 설명력도 가지지 않게 된다. 이처럼 푸코는 현재의 우리는 더 이상 사법적인 사회(société juridique)”가 아닌 사회에서 살아가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진단은 푸코가 법의 쇠퇴 규범(norme)” 혹은 정상화의 진보(progrès)”를 대립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푸코에게서 규범이란 법학자들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화의 수단으로서 고려되고 있다는 점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과 관련한 이러한 푸코적 테제는 논쟁거리이다. 먼저 푸코는 (홉스로 대표되는) 계약론 모델이 중세부터 고전 시대 말까지 지배적인 담론이었으며, 17세기(혹은 18세기)부터 규율 기술이 발전하고, 19세기(혹은 18세기)에는 생명정치(biopolitique)” 혹은 생명권력이 등장했다고 분석한다. 그런데 여기서 푸코는 계약론 모델이 중세부터” 17-18세기까지 이어졌다고 말하는데, 이러한 시대구분은 16세기의 장 보댕의 본질적으로 근대적인(proprement moderne) 주권 국가의 발명을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지워버리고 있다. 물론 이러한 삭제는 다분히 의도적이며 이러한 생략의 이면에는 근대성(modernité)”이 주권 국가와 함께 탄생했으며 이것은 종교적 분쟁과 경제-세계의 형성으로 인한 신학과 정치의 분리(이른바 세속화(sécularisation)”)와 관련이 있다는 통속적 설명에 대한 푸코의 거부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푸코는 이러한 설명 방식이 근대성의 계보학에서 에 너무나도 과도한 역할을 부여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다. 푸코가 보기에 법은 (비록 이 용어를 푸코가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부구조에 지나지 않는다  법에 대한 이러한 평가절하는 푸코가 마르크스주의와 공유하고 있는 점이다. 하지만 점차사회 내에 사법적이거나 국가적인 요소로 설명되거나 환원될 수 없는 권력과 지식의 형태가 생겨나면서 법의 심급으로부터 권력을 사유하는 모델은 패러다임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비록 인식되지 않은 채로 잠들어 있었으나 언제나 작동하고 있었던 진실이 드러난다. “인권(droits de l’homme)”을 포함하여 사회의 사법적-정치적 거대 구조들(grandes structures juridico-politiques d’une société)”는 결코 [사회 내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의] 충분한 설명 원리가 될 수 없다.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인권과 관련한 거대서사의 이면(versant obscur), 다시 말해서 미시적 규율 권력망의 짜임을 제시하는 다음의 구절은 현재의 맥락에서 시사적이다.

 

[지금까지는] 계약이 법과 정치적 권력의 이상적 토대로서 상상될 수 있었다 ; 판옵티콘은 보편적으로 퍼진 교정의 기술적 방식을 구성했다. […] 자유를 발견했던 계몽주의는 규율 역시 발명했던 것이다. (Surveiller et punir, p. 261)

 

             요컨대 사법적 구조는 독자적인 실재성을 지니지 않으며 그 기저에 미시적 규율 권력이 작동하고 있어야만 그 효력이 발휘될 수 있다. 이러한 인권이라는 것이 유효하다면 그것을 보장하는 내용이 법전에 써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법전의 조항을 현실화하는 (규율) 권력 장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권과 규율사회의 시작이라는 두 가지 현상이 공속적이라는 푸코의 주장케르베강이 보기에 자유주의에 관한 푸코의 성찰은 이 두 가지 현상 사이의 상호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인권을 둘러싼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탈신비화를 겨냥하고 있다. 하지만 케르베강은 이러한 푸코의 주장에 한 가지 의문을 표한다. 과연 인권에 대한 순진하게 찬양하는 담론을 비판하기 위해 반드시 국가 그리고 역시 사회에도 포괄적인 참조점을 제공해주는 규범적 체계로서 법이때의 법은 푸코가 이해하는 계약 이론으로 환원될 수 없을 것이다의 실효성을 완전히 폐기하는 결론을 내려야 할 필요가 있는가? 케르베강이 보기에 푸코는 목욕물(자유주의-공화주의적 이데올로기)을 버리려다가 아이(단순히 사회적 역관계의 위장만은 아닌 규범성의 가능성)까지 내던져 버렸다.

             하지만 에 대한 푸코의 말이 계약론으로 환원되는 법에 관한 담론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다른 텍스트들에서 푸코는, 근대적 법은 아니지만, 법이 대한 이론적 쟁점에 첨예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예컨대 푸코는 1971년 강의(Leçons sur la volonté de savoir)에서부터, 주로 고대 그리스 전통에서의 법 개념을 분석하고자 시도하는데비록 이러한 분석에서 (droit)”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지만예컨대 그는 헤시오도스나 소포클레스에서 dikè, dikaion, themis, thesmos, nomos 등의 용어 사이에서 형성되는 의미망을 분석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더 나아가 1980년대 푸코는 주체성의 윤리적 구성과 관련한 관계를 고려하면서 규범으로서의 에 관해 성찰하고 있다. 이때의 푸코가 주로 참조하는 텍스트가 고대의 것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은 분명 오래되기는 했으나 ()시대의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