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기록

Bertrand Binoche, « Quelle histoire, de quelle philosophie » 프로토콜 통합본

RenaCartesius 2023. 12. 16. 00:05

강독 세미나 프로토콜 2회 분을 통합한 것

 


 

전통적으로, 철학과 철학사는 제도적 형식(주석과 논문, 대학과 고등사범 준비반 등)에서부터 완전히 구별되는 지적 활동처럼 여겨진다(¶. 1). 그러나 피에르 마슈레의 이 책은 그러한 순진한 믿음을 비판한다. 마슈레는 철학이 형성되었던 (계급과 제도 등의) 역사적 정세 속에서 ‘철학’의 내용만을 추상하여 거장들의 이름만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는 철학사 서술을 거부한다(¶. 2). 

마슈레가 이 책에서 선보이는 철학의 역사는 헤게모니적 방식으로 쓰인 철학사와는 전혀 다르다. 그는 흔히 철학자로 여겨지지 않거나 정치색이 너무 강해 이론적 순수성을 해친다고 판단되어 철학사 서술에서 배제되기 일쑤인 군소 사상가들을 다루고 있다. 우리의 대학에서는 오직 거장들만이 가르쳐질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지만, 마슈레가 보기에 과연 누가 ‘거장’인 것인지는 자명하지 않다. 따라서 그는 이미 구성된 위계 질서를 받아들이기보다는 과연 어째서 대학에서 어떤 사상가들은 어떤 이유로 대가로 인식되고 또 어떤 사상가들은 “그런 건 철학이 아니야”라는 평가를 받게 되는지 갈리게 되는 ‘특이점’들을 추적하고자 시도한다(¶. 3). 

물론 ‘대가’들의 이름이 마슈레의 이 책에서 완전히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마슈레가 이해하고자 시도하는 특이점들이 대가들의 이름과의 대면 없이는 온전하게 파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대면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첫째로, 비교의 방식이 있다. 예컨대 칸트와 관념학자들은 어떻게 철학을 확실한 학문의 길로 들여놓을 수 있는지 공통의 문제를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답변을 제시하게 되었는지 비교하는 것이다(¶. 4). 둘째로, 두 개의 철학적 담론 사이의 ‘잡종화’가 이뤄지는 방식을 보여주는 형태의 대면이 있다. 이것은 특정한 역사적 정세에서 형성된 철학적 담론이 다른 철학적 담론 속으로 변위(예컨대 생-시몽주의자들의 스피노자 해석 등) 될 때 생겨나는 변화와 그 결과에 주목한다(¶. 5). 

마슈레가 보여주는 이러한 철학사는 ‘프랑스’ 철학의 역사라는 점에서 현재 우리(비노슈와 그 동료들 ^^)의 연구활동과 매우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어째서 현재 프랑스 대학의 철학과에서는 19세기의 프랑스에서 전개된 지적 활동들을 가르치지 않는가?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한다면 우리가 가르치는 ‘19세기 철학사’는 ‘독일 철학’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반면 보날, 기조, 프루동 등은 가르쳐질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마슈레 등의 노력과 19세기 프랑스 철학을 다루는 몇몇 출판물들의 발간으로 현재의 상황은 조금 더 개선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철학의 역사’에서 19세기 프랑스는 망각 속에 방치되어 있다. 이러한 망각은 현재 우리가 가르치는 ‘철학’ 및 ‘철학사’가 19세기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지적 활동과는 무관한 것처럼, 다시 말해서, 우리가 그로부터 ‘자유로운’ 것처럼 여기게 만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가 우리가 무지한 한에서만 그렇게 느낄 뿐이다(¶. 6)

프랑스 철학의 역사와 관련한 이러한 공백은 계몽, 분석, 유물론, 민주주의와 관련한 담론들을 하나로 뒤섞어 한꺼번에 처분해야 했던 프랑스의 역사적 정세에서 기인한다. 19세기 프랑스 대학은 혁명의 여파로부터 벗어나야 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혁명과 깊은 관련이 있던 ‘이데올로기’들 대신 스코틀랜드 학파나 독일 철학 그리고 기독교주의에 의존해야 했다. 이처럼 혁명을 진화하려는 반동적 이유로부터 현재 우리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철학사 전통이 사후적으로 발명되었고 이 전통에서 19세기 프랑스에서 전개된 다양한 지적 활동들은 ‘철학’이 아닌 것으로서 배제된 것이다(¶. 7).

하지만 “프랑스 철학”이라는 생각이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국민국가들(États-nations)의 등장과 함께 민족 철학들(philosophies nationales)에 관한 환상이 나타났던 바로 이 시기였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프랑스에서는 역설적이게도 프랑스의 국경을 넘어 해외의 학설들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프랑스적인” 철학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계몽주의가 기각했던 “형이상학”을 구제하는 작업이었다. 그 이전까지 일방적으로 발견되는 것으로서 진리의 체계를 구성하는 것과 달리 이 새로운 철학은 절대자의 체계를 정초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자아에 관한 탐구를 수행하는 것이었는데 또한 이것은 과도한 비판과 회의주의를 종식시키고 모든 것을 화해시키는 종합의 시도이자 절충주의의 철학이었다. 예컨대 콩트의 실증주의는 콩도르세와 메스트르의 놀라운 결합을 이뤄낸다. “프랑스 철학”이 형성된 이러한 맥락을 고려한다면 괄호 쳐지지 않은 채 “자연적으로” 미리 주어져 있는 어떤 프랑스 철학이 있다고 보는 것은 순진한 시각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프랑스 철학”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철학들을 “프랑스적인” 것으로 만드는 특수한 철학하는 방식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아주 특수한 정세 속에서 어떤 철학들이 “프랑스적”이게 것이다. (¶. 8)

이로부터 아주 명백하게 드러나는 사실은 철학사를 만들거나 혹은 그것을 변형시키는 일은 우리가 그 역사를 쓰는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알튀세르가 강조한 것처럼, 철학은 실천과 반대되는 의미에서의 그저 순전한 이론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실천의 일종으로, 다시 말해서 이론적 실천으로서 재정의되어야 한다(¶. 9).

 이것은 철학은 그것이 전개되고 재생산되는 제도 바깥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은 그것의 물질적 토대인 제도로부터 추상될 수 없다. 그런데 프랑스에 철학은 아주 독특한 제도화 과정을 거쳤는데 바로 철학과 학교 그리고 공화국의 사이의 매우 긴밀한 착종이 일어난 것이다. 이로 인해 철학 교육은 곧 시민성 교육과 직결되었으며 철학을 공격하는 (종교, 인문과학, 경성과학, 문학 등의) 시도들에 맞서는 것은 곧 공화국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10).

이러한 맥락에서 “세속주의(laïcité)”는 “타협의 이데올로기(idéologie de compromis)”로 나타난다. 만약 철학이 그것의 제도적 틀에서 수행된다고 한다면 이는 곧 그 철학이 무슨 내용을 주장하든지에 관계 없이 철학이 “이데올로기”와 완전히 무관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마슈레의 책은 “이데올로기” 개념이 가진 여러 층위에 대한 성찰 역시 암암리에(en filigrane) 포함하고 있다. 먼저, 이 개념은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등 정치이념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철학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며 그렇기 때문에 철학적 갈등은 이데올로기적 갈등이다. 예컨대 시에이예스, 프루동, 보날 등의 작업은 이데올로기 투쟁으로서 전개된 “프랑스” 철학의 측면을 잘 보여준다 (¶. 11).

그러나 더 근본적인 층위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프랑스” 철학의 역사를 탐구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라는 개념 자체의 발명사를 살펴보는 것이다. 즉, 이 책은 1796년 데스튀트 데 트라시가 만들어낸 대문자 이데올로기, 그러니까  “관념학(Idéologie)”이, 나폴레옹에 의해 경멸적 의미가 담긴 소문자 복수의 (우리가 역사의 종언과 함께 끝이 난다고 말하는 바로 그 의미에서의) 이데올로기들(idéologies)이 되고, 마침내 마르크스가 계승한 개념으로서의 이데올로기로 변모하는 개념사 연구를 담고 있다. 이러한 역사주의적 관점에서 이데올로기 개념을 고려했을 때 이것은 정치적 이념(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집합적 신념들의 새로운 체제를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마슈레는 혁명에서 유래한 사회는  “자동차가 휘발유로 굴러가는 것처럼 이데올로기로 굴러간다”라고 말한다(¶. 12). 

이러한 의미에서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때의 이데올로기는 곧 혁명의 단절을 완화시키기 위한 필요성으로부터 발명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혁명을 봉합하기 위해서는 단지 새로운 내용을 발명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그 내용을 질서짓는 방식, “소통(communication)”의 새로운 방식을 발명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개념의 이러한 의미론적 층위를 고려한다면 철학이 언제나 이데올로기였다고 하거나 철학 안에 이데올로기적 요소가 있다고 말하기보다는 19세기 당대의 (프랑스) 철학이 중립적 언어의 모델에 입각한 공통의 성찰적 공간의 구조화 방식으로서 이데올로기의 필요성 자체를 사유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이해된 이데올로기의 의미를 고려한다면 (프롤레타리아트 이데올로기 등과 구별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따로 있어서 그것이 부르주아 사회와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오히려 이데올로기 개념 자체가 본질 상 부르주아적이며 이 개념은 독단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각자의 생각을 교환하고 그로써 스스로를 사유할 수 있다고 믿는 그러한 유형의 사회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해야 더 적절할 것이다(¶. 13).

실제로 계몽주의자들은 “사회적 끈(lien social)”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종교적 신앙이 아니라 공적 의견(opinion publique)에 주고자 시도했다. 아마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는 시민들 사이의 관계를 세속적 용어로 설명하려는 이러한 시도를 명명하기 위해 발명된 것이리라. 이러한 맥락에서 이데올로기를 통해 굴러가는 사회란, 종교와 합리적 담론을 구별하고 신중히 숙고하는 개인들의 협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사회의 결속을 가로막는 독단적인 신념들―그리고 이 신념은 경멸적 의미에서의 “이데올로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을 배제해나가는 것으로 유지되는 사회일 것이다. 우리의 근대 사회는 바로 이 꿈, 다시 말해, 이 이데올로기를 통해 굴러가게 될 것이다. 비록 이 꿈은 대개는 악몽이었으며 우리는 여전히 그 속에서 끝없이 헤맸지만 말이다(¶. 14). 

철학자에는 두 가지 범주가 있다. 현재 세계에 만족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피에르 마슈레는 명백히 후자에 속한다. 이 책을 비롯하여 철학사와 관련한 마슈레의 많은 저작들은 무엇을 지식으로서 가르치고 또한 무엇은 지식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대학의 규범들에 관해 탐구하고 있다. 제도적 제약 앞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