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쇄지담

黑猫

RenaCartesius 2023. 8. 23. 07:03

어떤 슬픔은 그것이 슬픔인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아주 잔잔하게 흘러들어와 느린 속도로 마음에 와닿는다. 들려온 일이 사실이 아닐 수 있으며 여전히 다른 가능성이 열려 있을 수도 있다는 약간의 희망 섞인 기대가 슬픔의 느낌을 지연시키지만 느낌은 언젠가는 확실히 도착하여 괜히 더 오랫동안 품게 되고 그렇기에 깊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느리게 도착한 만큼 긴 시간 동안 천천히 애도할 수밖에 없는 상실의 자국을 남긴다. 

 

어느 날부터 별장에 종종 찾아오던 검은 고양이 쫄보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느닷없이 찾아온 일은 아니다. 쫄보와의 만남이 길었던 만큼  쫄보의 나이를 정확히 알 수 없더라도 그 아이가 야생 고양이치고 이미 상당히 오래 살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출국하기 전부터 어쩌면 이번에 보는 것이 마지막이라고 속으로 충분히 생각하고 있었다. 더 이상 쫄보가 별장으로 찾아오지 않고 쫄보의 새끼들만 나타난다는 소식을 처음 전해들었을 때 그래도 어느 날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더 이상 못 보게 되는 일이 불합리하다고 아니 부당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아이의 죽음을 목격하지 않았다. 그러니 잠시 나타나지 않는 것을 죽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만 할 필연적 이유는 없을 것이다. 부재가 상실이 아니므로. 나는 그렇게 이별을 미뤄왔다. 

 

하지만 쫄보는 계속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는 적어도 내가 그 아이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그 아이를 잃어버린 것이다. 내가 자리를 비운지 오래이니 원래부터 그 아이를 볼 수 없는 상황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잠시가 영영이 되는 순간, 부재가 상실이 되는 순간, 어쩐 일인지 얕은 슬픔이 조금씩 밀려오고 있다. 

 

어쩌면 작년 초여름 한국에 잠시 들렸을 때 시간을 내서 별장에 갔다면 너를 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때 이루어졌을지도 모를 만남이 마지막이 되었다면 어쩌면 지금 조금 덜 슬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는 내가 언제 가더라도 너를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특히나 붙임성 없는 고양이였으므로 나와 특별한 교류나 왕래가 있던 존재는 아니었다. 내게 무엇인가를 베풀어 준 적도 없다. 하지만 둘 사이의 특별한 사건이 없었더라도 잠시 곁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특별해지는 존재도 있다. 특히 동물은 더욱 그렇다. 우리의 관계는 상호적이지 않았고 대등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의 부재 혹은 죽음이나 상실조차 너에게 슬픔의 이유가 되지 않았겠지만, 하지만 나는 너를 잃은 것이 슬프다. 그것도 내가 너를 볼 수 없는 순간에 너를 잃어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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