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쇄지담

자기애에 관하여 ; 혼합된 단상

RenaCartesius 2023. 4. 10. 08:00

자기애는 모든 것을 굽어지게 만든다. 스스로에 대한 애정은 나는 나이기 때문에 옳고 타인은 타인이기 때문에 곧 타인은 내가 아니기 때문에 그르다는 결론을 마음 속 아주 깊은 곳에서 고집하게 만든다. 그렇게 자신으로부터 타인에게 향하는 화살은 언제나 적중해야 하지만 타인으로부터 자신에게로 향하는 화살은 언제나 비껴나가게 되어 있다. 나는 나 자신을 너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 나를 판단하는 것조차 너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으로 처리해야 한다. 너의 판단은 틀릴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데 너의 기준은 나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는 너의 편의에 맞춰져 있어 나에게 부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긍정을 지워내고서는 즉 일단은 자기 자신으로서 존립하지 않은 채로는 타인과의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를 사랑한 채로 타인을 대하게 된다. 그리하여 각자가 무한한 만큼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에 대한 사랑은 언제나 이 일차적인 자기애를 경유하여 그것이 허락하는 만큼만 발휘되고 늘 굴절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미안해하기보다는 차라리 미워하기를 택하고 용서하기보다는 단죄하기를 택한다. 각자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무한한 긍정이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여 서로 찌르고 걸어 넘어뜨리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자기애는 이 지상에서 가장 끔찍한 사랑이다. 

하지만 동시에 자기애는 이 지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무한한 사랑이다. 그 누구도 자신만큼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만이라도 무한하게 사랑해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무한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가늠해볼 수 있게 된다. 이 불완전하지만 무한한 사랑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우리 각자를 사랑하는 그만큼의 크기로 우리 모두를 사랑하고 우리 모두를 굽어보는 자에게로 가닿을 수 있다. 아담의 원죄 이후 타락한 인간 종은 이렇게 지상의 사랑을 통해 천상의 사랑으로 가는 길을 엿볼 수 있다. 가장 끔찍한 사랑이 가장 최선의 사랑을 알려준다. 완전하게 무한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사랑 속에서 신은 모두에게 동일한 거리를 두고 있다. 그 동등성은 곧 공정성이다. 그렇게 신은 우리의 중심이 된다. 우리는 신을 통해서, 다시 말해서, 제3자를 통해서 서로 결속된다. 서로를 사랑하기 이전부터 우리를 사랑하는 신 속에서 우리는 만나게 된다. 내가 나를 무한히 긍정하고 사랑하는 만큼 모든 사람을 균등하게 사랑하기에 신법은 공정한 상벌을 약속하고 그로부터 우리는 정의와 책임을 배운다. 그 어떤 잘못에도 끝끝내 자기를 정당화하고 마는 우리와 같이 그러나 우리가 아님에도 신은 우리를 무한하게 사랑하기에 그로부터 우리는 자비와 용서를 배운다. 이처럼 신의 사랑은 우리의 사회성의 원천이자 원형이며 신의 사랑이 자기애의 배경으로 있기에 자기애는 끔찍함의 연쇄 속에서 우리를 밀어넣는 동시에 우리를 선으로 인도한다.


 
파스칼은 자신의 말에 과연 얼마만큼의 신뢰를 주었을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제도들은 유한한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이러 저러하게 굽어져 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자기-타자 관계를 조율해줄 제3자는 완전하지 않다. 국가나 법 혹은 여론은 단순히 확장된 자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파스칼만큼 좌절하고 낙담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신랄하게 자아의 환상을 벗겨내고 자기애의 독살스러움을 꿰뚫은 사람은 좀처럼 없으니 말이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은 곳으로 향하는 길을 보았다는 점이 그를 빛나게 한다. 어쩌면 그는 확률에 기대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종교적 신념에 기초한 사회 운동은 모두 실패했다. 천상의 법을 지상에 실현시키려는 노력은 전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구원과 지복을 향한 종교적 열정이 불러 일으키고 또한 부풀린 사회 운동의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이 실패의 역사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종교와 정치의 영역은 교차하면서도 엇갈린다. 종교는 세속의 질서를 뒤바꾸기 위한 집합적 열정을 동원할 수 있는 역량과 기술을 지니고 있으나 그것을 실제로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수완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반대로 정치는 이미 모든 현실적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있음에도,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닌, 미래를 향한 인민의 희망에 대해 결코 완전한 지배력을 지닐 수 없으며 그 희망을 실현시켜주겠다는 희망조차 가지게 해줄 수 없다. '인민의 아편'이라는 제목의 박사 지도교수 수업은 정치와 종교의 영역이 교차하면서도 엇갈리는 이 지점을 다뤄보고 있다. 그럼 지금까지 『신학정치론』을 읽으라는 바이럴 광고였습니다. 그럼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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