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쇄지담

Bygone

RenaCartesius 2023. 4. 2. 07:43
 

Rodrigo: Concierto de Aranjuez: II. Adagio

Joaquín Rodrigo · Song · 2020

open.spotify.com

 


 

근래에는 지나간 일들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딱히 회한에 잠기는 것은 아니지만 고개의 방향이 미래보다는 과거 쪽으로 돌아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돌이킬 수 없이 종결되어 버린 시간들을 나도 모르는 새에 꽤 오래 떠올리고 생경함을 느낀다. 이럴 때면 기형도의 시, ⟨대학 시절⟩을 곱씹게 되는데 막 대학에 들어가 그 시를 처음 읽던 시절의 나는 그런 시절의 나를 언젠가 회고하게 될 미래의 나를 얼핏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처럼 당시에는 나의 시간축은 미래를 향해 기울어져 있는 것이 당연했다. 대학을 졸업하는 것도 유학을 오는 것도 그 모든 일들을 그때부터 당연하게 여겼다. 그것은 당연히도 현실이 되었지만 막상 지금 이 순간은 지금의 현실이 꿈었던 시절보다 덜 현실적이다. 덜 무모해지고 더 신중해진 만큼 아니면 체념과 낙담이 더 빨라진 만큼 미래를 섣불리 예상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까. 나는 더 이상 미래를 전망하지 못하게 되었다. 10년 후의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잘 가늠되지 않는다. 현재의 내가 과거를 바라보니 미래를 바라보는 과거의 나와 자꾸 눈이 마주친다. 

 


 

오늘의 논문 진도는 빠른 속도라고는 결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꽤 매끄럽고 순조로이 흘러갔다. 잠들기 전에 지금 쓰는 부분만 완결해두는 것이 목표이다. 올리브는 아직 새순만 틔우고 더 이상의 진전을 보이고 있지 않다. 다급하게 재촉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란 것은 안다만 싹이 난 것이 벌써 몇 개월 째인데 아직도 잎사귀를 내지 못하냐고 가끔은 묻고 싶어지기도 한다. 작년의 사월에 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는 아주 무성하지 않았냐고 타박하면서 말이다. 너도 해마다 다른 것이겠지.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현재에 나름대로 집중하고 있어도 계속 이미 맺어진지 오래인 일들을 떠올리게 되는 시기가 있는 것처럼 성장이 도무지 더딘 것처럼 보이는 시기도 있을 것이다.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순간이 가장 큰 고비라고 하셨었다. 새순에서 잎사귀는 꽤 먼 거리를 뛰어야 하는 도약이니까. 

 


 

나잇살 먹고서 과거를 파먹는 구질구질한 사람은 별로 되고 싶지 않았는데 옛날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의 날 보면 나이를 먹으면 진짜 다 그렇게 되는 것인가 하는 고민도 든다. 어떤 면에서 나는 줄곧 지금부터의 나의 삶이 진짜 시작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정말로 이곳에 와버리고 나니 그렇게 달라진 것 또한 없는데도 앞으로 갈 곳은 정해지지 않았으니 계속 뒤를 보게 되는 것 같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여러 굴곡이 있었던 만큼 앞으로 갈 곳을 지금의 내가 딱 잘라 정할 자신은 없다. 보이는 대로 달리자.

 

 

 

'세쇄지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욥의 노래  (0) 2023.05.10
자기애에 관하여 ; 혼합된 단상  (0) 2023.04.10
Factum  (0) 2023.03.19
눈물자국 같은 나날들  (0) 2023.03.10
先後  (0) 2023.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