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20231112_計

RenaCartesius 2023. 11. 13. 05:09

나에게는 영원한, 감자와 겨울의 이미지

 
 
제법 쌀쌀하다. 겨울을 이기는 준비를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감자를 삶아 먹고 또 포토푀를 한솥 끓여냈다. 원래는 오늘 아쌈티 마들렌까지 구워내는 걸로 한 주를 마치려고 했지만 게으름이 도져서 다음으로 미루었다. 그래도 아마존에서 주문한 주방 저울과 온도계가 도착했으니 조금 더 정확한 마들렌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기 위해 한 주를 톺아보다 내가 여행 전에 예매했던 힐러리 한의 공연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원래 오늘 신학정치론 세미나가 끝나고 다녀왔어야 했는데 까맣게 잊고 집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으니 스스로에게 황당함을 느낀다. 노션에 기껏 일정을 적어놓고 확인하지 않는 내 탓이다만 파리 필하모닉은 왜 리마인드 메일을 보내주지 않는 것인지.. 
 


 
여행을 다녀와서 특별히 한 것은 없는데 순식간에 일주일이 지나갔다. 오히려 여행 중에 읽은 텍스트가 더 많을 정도로 공부량도 많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 베이킹을 하겠다는 당초 계획도 어그러졌다. 그나마 운동을 세 번 채웠으니 여행 다녀온 첫 주 치고는 나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 주에는 참석해야 하는 세미나도 여럿 잡혀 있으니 조금 더 날카로움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파리에서 마크 로스코 전시가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됐다. 꽤 오래 전 한국에서 열린 로스코 전시회에 우연히 기회가 닿아 관람한 후로 그의 그림을 좋아하고 있다. 퐁피두에는 작품이 몇 없어서 아쉬워했는데 이번 기회에 가서 천천히 보고 와야겠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 그 전시회 영부인이 기획한 거더라. 전시 해설은 강신주가 맡고, 참 여러 모로 어메이징한 전시회였다.)
 


 
 
케르베강이 직접 자신의 지적 이력에 관해 쓴 글을 읽다가 학부생 시절에 들었던 법학과 수업이 생각났다. 내가 한스 켈젠의 이름을 접하게 된 것은 그 수업을 통해서였다. 그 수업이 법학과 복수전공을 고려하게 된 계기였고 교수님도 나를 꽤 격려해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교수님 성함을 찾아보니 비교적 최근에 법철학과 관련된 책을 한 권 출판하셨더라. 반가운 마음에 메일을 보내볼까 하다가 우선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존 버거의 『A가 X에게. 편지로 씌여진 소설』―'쓰여진'이 맞는 표기일텐데 왜 국역본 표기는 이렇지?―를 뒤적이다 마리아 잠브라노의 이름을 발견했다. 나는 지도교수의 강의계획서에서 잠브라노를 알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의 잠재의식 깊은 곳은 이미 마리아 잠브라노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었겠구나. "말할 수 없는 것은 글로 써야 한다"는 그의 정식을 뒤집어 본다면 어쩌면 우리는 글을 쓸 때 사실 오히려 쉽게 말할 수 없는 것만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일지 모르겠다. 일기를 쓸 때 괜히 비장해지기 마련이라는 말처럼 일주일의 기록을 남길 때면 적어도 마무리만큼은 의미심장한 내용으로 장식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조금 더 쉽게 쓰는 연습을 하고 싶다. 
 


 
이번 주에는 새로운 사람들을 여럿 만나고, 한 편의 소설과 한 편의 연극 작품을 읽고, 몇 통의 메일을 썼다. 다음 주에도 B 교수님한테 메일을 보낼지 말지는 차치하고 나서라도 우선 업무 메일을 한 통 써야 한다. 그러나 특히 겨울에는, 사무적인 일과는 무관한, 손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일단은 무엇인가를 쓰기보다는 건성으로 책장을 넘겼던 존 버거의 작품을 다시금 읽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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