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20231029_計

RenaCartesius 2023. 10. 30. 04:11

갑자기 피부 트러블이 생겨서 원인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았다. 딱히 무언가 크게 바뀐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크 푸드를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일단 내복용 구내염 약을 먹고 설명서를 조금 읽어봤는데 이 약이라는 게 특별한 게 아니라 그냥 부족한 비타민을 공급해주는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과일을 먹지 않았다. 특별한 무언가를 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원래 하던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오렌지와 사과를 사서 먹고 있다. 

 

이번 주에는 꽤 오랜만에 책을 몇 권 구매했는데, 지베르 조셉에서 로크의 『인간지성론』과 장-프랑수와 케르베강의 『헤겔과 헤겔주의』, 그리고 그가 편집한 『칸트에게서 실천 이성과 규범성』 세 권의 사서, 조금씩 읽고 있다. 로크의 책은 전공 영역의 핵심 저작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고 박사 지도교수의 주요 테제 가운데 하나가 프랑스 계몽주의 형성에 로크의  『인간지성론』이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라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서 아예 영역본을 구해봤다. 사실 이 책은 국역본으로도 가지고 있는데 사실 펼쳐봤을 때 번역의 질에 충격을 받았다. 단지 호불호가 가린다거나 오역이 있다거나 트집이든 비판이든 그런 것과 관계없이 거의 모든 문장이 가독성이 상당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없는 것보다는 당연히 도움이 되겠지만 국역본에 손쉽게 의지할 수 없으니 아마 완독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케르베강의 책은 유튜브에서 법철학에 관한 그의 강연을 보고 규범성을 주제로 탐구하는 그의 작업에 관해 더 배워보고 싶어서 구매했다. 『헤겔과 헤겔주의』를 조금 읽다가 칸트의 규범성과 관련한 논문집에 수록된 그의 논문 한 편을 읽었다. 탁월한 작업이었는데 철학사적으로도 얻은 지식이 많았고 칸트 철학의 내용을 다시 보게 되었으며 이전에 읽었던 푸코에 대한 그의 논문에서 왜 푸코에게 "정상화" 과정이 아닌 규범성 일반에 관한 이론이 없다고 주장하는지 그 이유를 더 뚜렷하게 알게 되었다. 내 전공분야에 관해서도 조금 더 곰곰이 성찰하게 되는 계기였다. 나는 스피노자 연구에서 규범성과 주체성을 주제로 잡았지만, 케르베강이 『헤겔과 헤겔주의』에서 인용하는 헤겔의 말처럼, 정말로 한 철학자가 자신의 시대를 넘어서서 작업할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과연 스피노자 연구를 통해 이 두 가지 주제에 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정말 빈약한 연결고리만을 찾아낸다면 현재로서는 케르베강이 도덕의 영역에서 법과 윤리의 범주를 구별하는 방식이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 4장의 신법에 관한 논의와 윤리와 정치의 영역을 구별하는 그의 철학 전반과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 정도이다. 하지만 정말로 '법철학'이 없던 시대에 활동하던 스피노자에게서 오늘날에 울림을 줄 수 있을 만한 규범성 이론을 재구성할 수 있을까? 더 공부하고 볼 일이다. 

 

원래 케르베강의 논문은 이번 주에 다 읽고 블로그에 정리해서 포스팅하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 강제성이 없으니 계속 미루다 이 꼴이 됐다. 만성절 방학이 끝나면 공부 모임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논문을 읽자마자 빠삭하게 정리하고 점차 축적해나가야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학부 시절 법학을 부전공하지 않은 것을 다시 한 번 후회했다. 아니면 아예 졸업을 늦추더라도 복수 전공을 할 걸. 그때는 왜 그렇게 무조건 빨리 졸업하려고 했을까? 그러다 불현듯 나의 뇌리에 엄청난 생각이 스쳤다. "방통대 법학과에 등록해볼까?!" 어쩌면 내가 너무 방통대의 학사과정을 만만하게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번 정도 실정법과 관련한 학문의 기초를 닦아두지 않는다면 규범성과 관련해서 앞으로 더 나아가기 어려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의 스피노자 연구자 Jacque-Louis Lantoine도 박사 학위 취득 후에 다시 종교학 석사 과정을 했던데.. 나도 한 번...? 🤔

 

M2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매일 일기를 쓰던 삶의 패턴이 한 번 틀어지게 되었다. 일기를 쓰기 않으니 일주일의 결산에도 쓸 것이 적어지는 것을 느낀다. 만성절 방학이 끝나면 다시 한 번 일기를 내 삶의 질서 속으로 들여오겠다. 

 

이번 만성절에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짧은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풋풋한 마음으로 종이신문을 구독하고 또 요일 장터에 나가 호박을 사서 요리를 했던 것이 기억 난다. 올리브 나무 벤투가 회광반조로 다시 싹과 꽃을 틔운 뒤 죽어버리고 만 것도 그 즈음이었던가? 가끔은 모든 일이 삶의 지독한 알레고리인 것만 같다. 

 

닿지 않는 것에 괜히 손을 뻗어보고 거리를 가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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