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쇄지담 34

Dan Arbib의 발표를 참관하고서(20220426)

얼마 전에 참석한 학회에서 Dan Arbib의 발표를 들었다. 최근의 연구성과를 내놓는다기보다는 자신이 이미 박사논문에서 한 작업을 다시 소개하는 느낌이었는데 발표의 핵심은 아니었지만 그가 「제3성찰」에서 생각하는 나에게 주어져 있는 신 관념의 무한성과 관련해서 주목한 '비교' 개념이 기억에 남는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나는 그의 비교 개념을 듣고서 생뚱맞게도 (「3성찰」의 논의나 데카르트에게 실재성의 개념을 고려해보면 다 연관은 있겠지만) 스피노자가 불완전성은 어떠한 실재성도 없고 이것과 저것을 비교할 때만 생각해볼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게 떠올랐다. 그 후로는 이따금씩 생각한다. 비교한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하는 행위일까. 왜 우리는 비교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길까. 비교할 수 있는 ..

세쇄지담 2022.07.14

Karl Blossfeldt의 사진을 접하고(20220504)

식물을 아주 가까이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라고 할 만한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관찰하다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식물의 싱그러움보다는 마치 도형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이질감을 느끼는데 또 한편으로는 식물의 잎맥은 마치 혈관 같아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생동감이 느껴지고 그래서 징그러워진다. 그런데 이런 추의 체험 때문에 괜히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싶어지고 그렇게 식물에게서 식물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무엇인가를 자꾸 발견하게 된다.

세쇄지담 2022.07.14

박기영의 ⟨내가 생각했던 세상은..⟩을 듣고서(20220505)

박기영의 내가 생각했던 세상은.. Apple Music에서 박기영의 내가 생각했던 세상은.. 음악을 감상하세요. 1999년. 길이: 4:26. music.apple.com 루소에게 적잖이 동질감을 느끼는 이유는 투명성에 대한 집착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인데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기만 하면 모든 불화가 씻은듯이 사라질 거라는 루소의 순진무구함이 나를 참 부끄럽게 하면서도 그런 해맑은 믿음을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없기에 그에게 어떤 속박감을 느낀다. 물론 투명성을 향한 루소의 강박은 무척 심각한 것이어서, A가 B에 대한 한 대단찮은 뒷담을 B에게 전달하는 등 사람들 사이에 있을 수밖에 없고 성숙한 사람이라면 다들 알아서 묻어둘 작은 불만까지도, 심지어 ..

세쇄지담 2022.07.14

⟨타이페이 스토리⟩를 보고서(20220511)

꽤 오랫동안 정체감 속에 지내서 그럴까. 어딘가에 엉겨있는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주 낯설지는 않았던 까닭은. 그래도 영화에 아주 몰입할 수는 없었는데 가끔씩 나는 타인의 이야기가 별로 필요하지 않거나 아예 흥미가 사라지는 때가 있는 듯하다. 관람하는 내내 수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작품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한 것 같다. 어쩌면 영화 자체가 적적한 분위기를 연출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감독이 인물들을 바깥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영상에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주기적으로 타인에게 집중하기 어려운 때가 찾아오는 내 특성 탓인 것 같기도 하다. 오늘도 영화를 보겠다고 다짐해놓고 막상 너무 보기가 싫었다. 결국 본 게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결말은 조금 별로였다..

세쇄지담 2022.07.14